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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사/백제

백제에 대하여 5편 - 제3장 쿠쉬나메 재해석

◈ 백제에 대하여 5편 - 제3장 쿠쉬나메 再解析

●쿠쉬나메로 본 당시 國際(국제)상황분석●


"쿠쉬나메"서사시는 사산왕조(사비왕조)가 이슬람군으로
부터 침략을 당하자 왕족들과 왕자일행등은 피난을 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페르시아왕자 아바틴일행은 중국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新羅(신라)로 들어 오는것으로 그려진다!
당시 신라는 黃金(황금)으로 둘러쌓인 이상향으로 나타난다.
쿠쉬나메 이야기에 60%는 신라이야기로 꽉 채워져 있다고 한다.
여기를 "바실라" 라고 한다

▲ 바실라가 신라인가?

바실라에는 금이 많아서 개도 목거리에 금을 찬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신라가 지금의 경상도 신라인가?
당근 아니죠!! 그럼 어디인가? 탐색해봅시다!




★바실라는 시나르평원의 異偁(이칭)★

왕자 아바틴일행은 이슬람군의 공격을 피해 동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그리고는 중국으로 간다고 했다.
제가 볼때는 현중국이 아니고 中山國(중산국)으로 봅니다.
당시 중산국은 타클라마칸실크로드上에 위치해 있었다.
여기는 유라시아대륙의 종교적 聖地(성지)였다!! ##박용숙교수는 符都(부도)교황청이라 함.

▲ 위자도상에 Shan Shan으로 표기되어 있는 지역이다.

요즘명으론 "누란왕국"이다. 사산왕조의 山짜가 같다.
머 !!!같은 領地(영지)로 본다. 사산왕조가 보호해주던 성지같은 곳이다.

여기에 왕자일행도착하여 후일을 도모할려고 하는차에 이슬람침략자가 여기까지 추격하여 하는수 없이 다시 동쪽으로 피신을 한다 . 제도권에서는 중국에서 피신하여 경상도신라땅에 왔다고 해석하지만 당시경상도땅에 신라가 있었겠는가?
제가 볼땐 일단 여기를 피해 중국대룩남쪽으로 방향을 튼것 같다. 중국대륙에도 백제파르티아의 영지가 있었다.
지금이야 역사가 왜곡되어서 잘모르게되어 있지만 중국역사에 남북조시대라고 한시대에 남조지역이 백제파르티아의 영토이다.


이쪽으로 들어간다. 허나 이쪽지역은 백제파르티아내부에서 사비천도문제로 약간뜻을 달리하는 先住(선주)이동정착한 오리지날파르티아백제집단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왕자일행은 더동쪽으로 갈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 어디로 간것일까?


▲ 당시 중국대륙해안선은 지금과 같질 않았다!

▲ 이렇게 연두색처럼 육지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중국대륙동쪽끝에도 백제영향력이 존재하는 영지가 있었다. 그래서 삼국사기백제본기에는 동극(East pole)에도 나라를 세웠다고 써있다. 여기가 왕자일행이 당도한 곳이라 본다. 지금의 이어도 남쪽이다 지금은 바다이지만~~

여기가 쿠쉬나메에서 이야기한 바실라라고 본다.
고지도에도 시나르 라고 써있다. 즉, "시나르"가 바실라 라고 본다!!

▲ 위지도2번에 Sinnar라고 써있다 이곳이 바실라 이다


이곳이 왜중요했던가? 이것은 역사의 비밀중 비밀이다!!

여기에 왜 그렇게 금이 많았던가?
물론 여기는 黃金(황금)의 産地(산지)는 아니다. 금은 어디선가 산출되어 이곳으로 모인다!!



금은 의 금속으로 여겨서 財産(재산)의 값어치를 메기질못한다.
여기가 구약성경에서 얘기한 씨날평원 이다.
양자강중상류를 金沙江(금사강)이라 한다. 왜 금사강인가?

금(Gold)가 모래처럼 깔려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금사강이다.
여기의 금을 시날지방으로 가져와 어떤제련을 거쳐서 어디론가 운반하는 매우매우 중요한곳이다.
이 이론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유튜브채희석 편에서 엔키의 금채굴편을 시청바랍니다!!!
아마도 금집산지였기 때문에 나라복구자금을 구하러 가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역사상 백제를 당나라하고 침략해서 멸망케한 신라는 아닌것이다!!

사산조페르시아가 백제인데 그백제를 침략한 원흉이 신라인데 그신라에가서 구원을 요청한다?

말이 않됩니다!!

쿠쉬나메에 나오는 바실라는 고지도상의 Sinnar라고 주장합니다.
여기가 金의 집산지였고 모든것이 풍요롭기 때문에 "이상향유토피아"라고 쿠쉬나메에서 묘사되었던 것입니다.


여기 책임자왕은 아마도 페르시아와는 아주 가까운 왕
이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공주도 왕자에게 시집을 보냅니다.




이렇게해서 바실라의 공주 프라랑은 아바틴왕자에
부인이되어 아기를 낳고


그아기가 자라서 페르시아(백제)를 수복한다는 내용입니다.


●쿠쉬나메재해석●
하나의 민담으로 진실에 근사하나 약간 변형된 내용입니다.

▲ 이란 역사학자 보수기교수 인터뷰입니다.


위의 인터뷰는 일반시민인데 코레아를 매우 친근한 나라로 생각하고 있읍니다. 다시 사산조로 돌아가서


기존제도권에서도 사산조멸망이후에 상당히많은 유민이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대륙으로 들어 오는것을 인정하고 있읍니다.

왜 중국대륙으로 들어왔을까요?


인근 마우리아(굽타) 왕조지역도 있었음에도 먼중국대륙으로의 피난행렬이 줄을 이었읍니다.

이것은 중국대륙에 또다른 페르시아백제지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일로 보여집니다!


중국대륙의 백제영토로 밀려든것입니다.



이렇게 백제사산조가 멸망하자


위의 당이라 쓰여진 지역으로 대규모로 들어 옵니다.

당나라가 아니라 백제중국대륙정권으로 보입니다.

진짜역사에서는요!!!
그래서 탈라스라는곳에서 이슬람압바스군대하고 결전을 벌이게 됩니다. 끝짱을 보자는것이죠!!
불행하게도 탈라스전투에서 중국대륙세력(백제) 는 패하고 영영 페르시아本土 즉, 백제본토는 수복을 못하게 된것이죠!!
중심에 고선지 장군이 있었읍니다.

▲ 위사진이 대조영드라마에서 고선지장군


결국 고선지장군은 당나라에 귀부한것이 아니고
백제중국정권에 고구려인으로써 귀부한것으로 봅니다.
지금의역사는 완전뒤죽박죽되어 있어요!!

唐三彩당삼채의 진실●
7세기중엽 새로운 도자기들이 중국대륙에 나타납니다
당삼채라고 당나라에 3가지색깔로 채색한 화려한 西域式(서역식)자기 라고 합니다!!
이것은 서역식자기라고 얼버무리지만 페르시아멸망 즈음에 페르시아도공들도 대거 중국대륙으로 넘어오면서 생기게된 현상의 결과물이라 봅니다.

백제가 망하자 많은 도공기술자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모티브는 바로 페르시아기술자가 중국대륙으로 넘어 오는것을 말한것이라 봅니다!!당삼채는 결국 백제三彩(삼채)도자기였다!!!



이둘은 거의가 스키타이식 페르시안모자를 쓰고있고 페르시아인종이다. 그들은 왜 이때대거 밀려들었는가?

원래 이슬람원리주의는 뭘만드는것을 싫어 합니다!
이후 이들기술자 집단은 중국대륙거의 전역에 퍼져서 도자기를 만드는데 중국도자기역사에 혁명을 일으킵니다.

▲ 당삼채 출토분포지. 사실 이지역이 중국대륙백제지역으로 보아야 됩니다!!


●백제페르시아 전투복장●
우리는 고구려만이 찰갑옷개마무사 기병을 운용했다고 배우는데 페르사아백제도 개마무사를 운용했다.



▣ KBS 다큐 퀴쉬나메




담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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