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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사/백제

백제에 대하여 5편- 제4장 무령왕릉의 비밀

백제에 대하여 5편- 제4장 무령왕릉의 비밀

●무령왕릉의 비밀●
百齊왕릉중에 오직무령왕릉만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 공주송산리 고분군5호분 6호분 그리고 무령왕능


무령왕능을 단 하루만에 포크레인을 동원하여 발굴함. 세상에 이런일도 있네!!



한마디로 개판발굴이네요!! 고고학발굴사상 망신살발굴

이무덤이 백제무령왕이란것은 묘비석에 의하여 증명한다고한다.

묘비석을 보면 백제영동대장군 邪麻라 나와있다. 사마 혹은 야마는 일본에서도 흔히 쓰는 이름이다.


욘사마 유명하지않은가! 일본왕족의 尊偁이다.
무령왕 어리적의 이름이 "사마" 라하면서 이무덤이 백제 무령왕이라고 우기면서 그냥 무령왕릉이 된것이다!!

사마는 백제파르티아체제에서 담로지역왕의 왕의 호칭이라본다. 이점은 전편에 얘기했다.
백제왕을 "영동대장군"이라 묘비석에 호칭하는것도 코메디이다!


묘비석(매지권)에는 이무덤은 지신에게 쌀200석을 주고 무덤터를
샀다 라고 써있다 무슨얘기인가?
당시왕이 땅신(地神)에게 무덤터를 쌀주고 삳다는것인데 묘한 뉘앙스를 풍긴다. 암튼

송산리 고분군에는 무덤이 여러개 있다.


다른무덤도 비밀리에 발굴했다고 하는데 자료가 없다!! 무언가 석연치않은 일들이다.

하여튼 한반도백제가 존재한증거 자료는 무령왕릉 밖에는 존재하질 않는다!!!
나머지 백제유적이라는것은 그냥 인간사의 생활유적일 뿐이다!!

무령왕릉같은 벽돌로 쌓은 무덤을 전축분이라 한다.


▼ 이런 전축분의 본거지는 중국양자강쪽에 양나라지역이다.


중국양나라는 남조로써 양자강남쪽을 점유했었다고 한다.
양자강이란 지명도 양나라에서 비롯됬다.

기존의 반도사관자들은 백제가 양나라의 제후국이란것을 은연중에 역설하고 있다.
梁나라는 남북조시대에 소흥이란 자가 세워서 겨우100년정도 존재하다가 없어진 짧은나라이다.
백제는 기록상으로도 700년이상된 역사대국인데 양나라같은나라에게 발발기었다는것이다!!
반도사관론자들에게 뇌파검사를 해보고 싶다. 암튼


▲▼ 양자강이남지역에 백제란 지명이 널려 있고 전축분도 즐비하다.


양나라전축분사진은 인터넷상 찾기가 매우어럽네요!
제가 한장 찾았는데 밑에서 2번째사진이 양나라고분입나다. 무령왕릉과 판박이자요!!!



암튼
양나라지역에 벽돌로 만든 무덤이 많은데 이런 벽돌을 재료로 만드는 방식은 어디서 온것일까?

●벽돌 양식의 본격적도래●
벽돌로 집을 만들거나 건축을 하거나 무덤을 만드는 유래는 수메르메소포타미아시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기가 구운벽돌건축의 효시는 자명하다!!
성경에도 바벨탑얘기할때 나오지 않은가? (창세기)


수메르문명의 지구라트는 모두구운벽돌로 만들어 졌다.

벽돌문화는 건축수요는 많으나 건축재료가 충분치않은곳에서 진흙을 구워 건축재료를 쓰는 방식이다.
파르티아백제도 초창기에는 진흙토성을 주로 쌓은것으로 파악되나

메소포타미아지역을 점령한이후 구운 벽돌제작방식을 전수 받은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로는 백제파르티아는 제국전역에 벽돌제작을
장려한것으로 보인다.
고구려는 석재를 가공하는방식이 주라면 백제는 구운진흙벽돌방식으로 구분할수 있다.
문제는 중국대륙쪽으로 백제파르티아가 본격적으로 넘어오는데 이때 중국대륙에 벽돌건축방식이 일반화된것이라고 본다.
지금중국에가면 舊가옥이나 고성까지도 구운벽돌로 지어졌다.


AD7세기이후에 페르시아백제문화는 중국대륙으로 넘어와 본격적으로 동양화가 되었다.

그러나 그전에도 조금씩 영향을 미쳤는데 주로 중국대륙중남부 백제점유 지역에서 구운벽돌이 퍼지기 시작한다.
그과정에서 전축분형태도 생겨나고 마침내 한반도에도 들어온것이 지금의 무령왕릉이란 명칭으로 나타나고 있다.
무령왕릉은 백제本王의 무덤이 아니며 지역담로수장 호칭인 "사마"로써 지역왕의 무덤같다!

그무덤의 본류는 메소포타미아지역으로 보는것이 타당하다. 거대한 文明移動의 결과인것이다!!!
한반도 무령왕릉도 백제유적임에는 틀림없으나 亞類(아류)로 본다!!

●연꽃 무늬전래●
연꽃무늬 하면 불교적의미가 생각난다 주로 동양식건물에 기와 수막새로 많이 나타나는데 이것의 원조도 메소포타미아로 본다.
이쪽에서도 많이 발견되고 있다.

파르티아유적에서 발견되고 있는 연꽃문양들

티베트연꽃무늬


전통연꽃무늬 수막새기와


무령왕릉출토품의 연꽃문양
<파르티아>출토문양과 판박이


●불꽃무늬의 전래●
무령왕릉 출토 머리관식은 불꽃무늬를 형상화하고 있다.



이런 관식이 백제왕의 머리장식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문양의 모티브는 "불꽃"이다.
왜 이런무늬가 무령왕릉에서 발견되고 있고 무었을 의미하는가? 에대한 연구가 없다.
단언컨데 이문양의 기원은 조로아스터교이다.

조로아스터교를 "배화교"라한다. 불을 숭상한다.
백제담로들도 전통에 따라 불을 숭상했을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머리에다가 불모양을 달았을것이다!!
이것도 파르티아백제의 전래증거로 본다!

조로아스터 교당의 꺼지지않는 불꽃

파르티아동전에 조로아스터상


머리에 불꽃을 상징하는 관을 쓰고 있다. 한반도무령왕릉의 머리관식과 매우유사하다.

조로아스터머리의 오오라불꽃



●결론●
무령왕릉은 본류백제왕의 무덤은 아닌것 같고 담로왕중에 하나인것 같다.
이들부장품을 대충 분석한결과 서남아시아 파르티아로 연결된다.
중국남조양나라라고 이름붙은 유적도 백제가 본류이며 25사 편찬시 백제를 여러나라로 나누어 이전투구한양 소설을 쓴것으로 보인다.
황하이남은 최소한 백제파르티아의 영토로써 오랜동안 다스려지고 있었다.
동양백제가 어떻게 망했는지는 알수없다.

앞으로 연구의 영역이다.
지금 중국25사역사책은 1920년대에 꾸며진 역사책이며 이런소설역사에 의하여 유적유물들도 거기에 맞게끔 이름 부쳐지고 있다.
이것이 탐원공정이며 서남공정이다. 우리는 이런것에 맞서 싸워야한다!!!

22담로 다큐에서 백제담로왕들을 열거하고 있다!!


다음편에는 백제부흥운동과 그이후~~에 대하여 고찰해보겠읍니다!!

무령왕 대담!!


출처::대조선삼한역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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