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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그리고 군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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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문건해제 - 푸에블로호 납치사건(상) 조선일보 2014.1.24.금 [안치용의 시크릿 오브 코리아(Secret of Korea)] 푸에블로호 납치사건(상) 미국, 전투기 동원해 북한 공군기지 타격하려 했었다 [미국 비밀문서로 드러난 푸에블로호 피랍 전말] 북, 피랍 3일전부터 토끼몰이식 추적…가장 유리한 원산 공해서 나포 미군 전투기 일본서 오산에 급파…그러나 일몰전 원산 도착 불가능해 출격포기 존슨 대통령, "30분 거린데 왜 피랍 때 공군이 출격 못했나?" 전투기에 장착된 핵무기 폭탄을 일반 폭탄으로 교체하다 시간 지체 푸에블로호 무전보고도 1-2시간씩 지연 전달돼 혼선 빚고 초동대처 못해 푸에블로호에 비밀 장비와 문서 많아 공군기로 격침 계획 김성은 국방장관, '김신조 청와대 습격때는 가만 있더니'격노 ▲ 1968년 북한에 의해 나포됐..
조선 대 미제 대결 1-2 EC-121 격추 사건(EC-121 shootdown incident)은 일본의 아쓰기 해군 비행장을 출발한 미국 해군 소속 EC-121 워닝스타 조기경보기가 1969년 4월 15일 14시경 (한국시각) 동해상에서 조선인민군 공군 소속 미그 21 전투기의 공격을 받아 해상으로 추락한 사건이다. 탑승한 승무원 31명 전원이 사망했다. 영공 밖에 있었다는 미국의 주장과, 자국 영공을 침범한 후에 격추 당했다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장이 엇갈린다.[1] 출처- 위키백과 더보기 ‎ 미해군 최악의 흑역사 '북한의 EC-121 정찰기 격추 사건' 2016‎년 ‎11‎월 ‎18‎일 ‎금요일, ‏‎오후 11:56:42 | 어메이징 코리아 미해군 최악의 흑역사 '북한의 EC-121 정찰기 격추 사건' 더보기 1969..
조선 대 미제 대결 1-1차 전 1-1차전 1968년 1월 23일 푸에블로호 사건 미 정보함 푸에블로호 피랍 사건 (Pueblo Incident)은 미 린든 B. 존슨 행정부 시절이던 1968년 미 해군 소속 정찰함 USS 푸에블로 (AGER-2)가 동해 공해상(동경 127 °54.3 ', 북위 39 °25 ')에서 북한 해군에 의해 나포되어 82명의 미 해군 승무원들이 11개월이나 붙잡혀 있다가 풀려난 사건이었다. 대한민국 해군 56함 침몰 사건이 발발한 지 1년 뒤이자 청와대를 기습하여 박정희 대통령을 제거하려다 미수에 그친 1.21 사태 이틀 후인 1968년 1월 23일 북한 원산 앞 공해 상에서 해양 조사선으로 위장한 미군의 정찰함 푸에블로호가 나포되었다. 푸에블로호는 일본 큐슈에서 출발해 소련의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했다. 소련의..
북한 현대사36 - 1.21 청와대 습격사건과 군부 강경파 숙청 북한 현대사 36 - 1.21 청와대 습격사건과 군부 강경파 숙청 1968~1969년 한반도는 매우 긴박하게 돌아갔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청와대를 습격한 1.21 사건이 일어났고, 그 이틀 후인 1월 23일에는 미해군 첩보선 푸에블로호가 북한 해안에서 나포되었다. 또한 같은 해 10월 말에는 울진,삼척에 180여 명에 달하는 대규모 무장부대가 침투했고, 다음해 4월 15일에는 미군 해군정찰기 EC-121기가 북한 상공에서 격추되었다. 한마디로 한반도에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 계속되었다. 1.21 사태는 한반도 위기의 시발점이었다. 북한의 특수부대원들이 청와대를 습격하고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서울로 침투, 세검정 고갯길에서 한국 군경과 교전 도중 무장게릴라 대부분이 사..
말레이 경찰청장 "김정남 문신 사진으로 신원확인 안 해" https://n.news.naver.com/article/055/00005098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