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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그리고 군사력/조미대결

비밀문건해제 - 푸에블로호 납치사건 (하)

안치용(재미 탐사보도전문기자) jesim56@gmail.com  / 조선일보 2014.1.24.금

[안치용의 시크릿 오브 코리아(Secret of Korea)]

푸에블로호 납치사건(하)

미국 CIA,
푸에블로호 납치 직후 군사공격 검토하며
북한지역 3차례 샅샅이 정찰


CIA 3차례 북한정찰 보고서 전체문건 첫 공개
3~5분만에 북한 남부지역 동서로 횡단…목표 90% 파악
CIA 주도에 국무부는 "너무 위험하다" 강력 반대


지금부터 46년전인 1968년 1월 23일 낮, 북한의 미그기와 초계정은 미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를 동해의 공해상에서 나포해 북한으로 끌고 갔습니다. 무장공비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하려고 시도한 것이 이틀전인 1월 21일.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미군 함정이 피랍되면서 한반도는 순식간에 전쟁공포에 휩싸였습니다.

바로 이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직후 미 중앙정보국(CIA)은 북한에 대한 군사적 공격을 염두에 두고 모두 3차례에 걸쳐 CIA 직속의 초음속정찰기를 출격시켜 북한의 남쪽 절반을 샅샅이 살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북한을 동서로 횡단해 정찰하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3~5분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당초 이 작전은 그 위험성으로 인해 백악관 안보회의에서도 작전을 결행할 것인지, 결행한다면 몇회나 북한을 횡단할 것인지 갑론을박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CIA가 공개한 블랙쉴드 작전 관련 비밀문서에서 밝혀졌습니다. 3번의 정찰 중 첫번째 정찰보고서는 예전에 알려졌지만, 2번째와 3번째를 포함한 전체 작전보고서가 공개된 것은 처음입니다.


▲ 46년전인 1968년 푸에블로호 피랍 사건 직후 CIA가 북한 정찰에 투입한 A-12 초음속정찰기.


CIA가 공개한 블랙쉴드 작전 관련 비밀문서에 따르면 CIA는 푸에블로호 피랍 사흘뒤인 1968년 1월 26일 A-12 정찰기를 띄워 원산항으로 끌려간 푸에블로호의 사진을 촬영한 것을 비롯해 북한의 동태를 살폈습니다. 또 같은해 2월 19일과 5월 6일에도 북한정찰을 실시했으며, 2월 14일과 4월 27일로 예정됐던 두차례의 정찰작전은 안전상의 이유로 취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이 작전은 조종사 등 극소수에게만 정찰목표와 비행루트 등이 알려질 정도로 극비에 붙여졌으며, 중국이 1월26일 CIA의 북한정찰을 포착해 정찰기를 추적하고 이 정보를 북한에 제공했다는 첩보가 입수돼 두번째 정찰비행계획이 지연되는 등 극도의 위험속에서 수행됐습니다.


▲ 상단 1, 2, 3 문단은 1968년 1월24일 오전 10시30분부터 11시45분까지의 백악관 안보회의록 중 발췌, 4문단은 1968년 1월 24일 오후 6시 백악관 안보회의록 중 발췌.


미국이 처음 북한에 대한 블랙쉴드 작전 여부를 논의한 것은 푸에블로호 피랍 하루뒤인 1월 24일 오전 10시30분 백악관 안보회의였습니다. 리처드 헬름스 CIA국장은 북한에 대한 군사작전 이전에 병력배치를 확인하는 사진정찰, 즉 블랙쉴드 작전이 절실하며 24 시간 이내에 출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국무부는 이 작전에 반대했고, 폴 니츠 국방부 차관은 정찰기를 띄우더라도 북한을 한차례만 정찰하는 것이 안전하며 2-3차례 정찰하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는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이날 오후 6시에 열린 백악관 안보회의에서도 블랙쉴드 작전 여부를 놓고 찬반양론을 거듭,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1회 정찰하자는 국방차관의 주장과는 달리 3회 정찰을 주장했고 마침내 린든 존슨 대통령이 이 작전을 승인하게 됩니다.


▲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3일뒤인 1968년 1월 26일 CIA 초음속 정찰기의 북한정찰작전 보고서 중 북한정찰내역 및 정찰항로.


▲ CIA 1차 북한정찰작전 때 촬영된 푸에블로호. 북한초계정 2정에 포위돼 있다


이같은 우여곡절끝에 CIA가 운영하는 초음속정찰기가 1월 26일 마침내 첫 북한정찰에 나섰습니다. CIA가 1968년 2월 5일 작성한 일급비밀보고서에 따르면 1월 26일 정찰비행의 작전명은 BX6847로 북한을 3번 정찰했으며 정찰목표를 촬영한 사진도 90%정도가 구름에 가려지지 않은 선명한 상태로 확인됐습니다

특히 원산항으로 끌려간 푸에블로호의 사진을 촬영한 것은 물론 84개 정찰목표중 71개를 커버하고 코미렉스(COMIREX - COMMITTEE on IMAGERY REQUIREMENT AND EXPLOITATION,영상정보획득위원회) 정찰목표 126개중 81개, 보너스타켓 752개를 포착하는 등 큰 성과를 거뒀습니다. 또 13개의 지대공미사일 사이트를 포착했고 이중 12개는 실제 미사일이 배치된 사이트였으며 북한 주요군사기지의 윤곽과 교통시스템, 공업지역등을 파악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 정찰기는 이날 오전 10시 11분 일본 오키나와 카데나 공군기지에서 출격, 오후 2시 11분 무사히 귀환했으며, 오전 11시 17분 53초, 오전 11시 44분 9초, 오후 1시 20분 21초 등 3차례에 걸쳐 북한상공에 진입,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이날 북한 상공을 세번째 횡단할때 오른쪽 엔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아찔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으며 작전뒤 양쪽 엔진을 모두 들어내 정밀검사를 실시했습니다.

일본에서 출격했음에도 북한 상공을 3번이나 서에서 동으로, 다시 동에서 서로 가로지르며 정찰작전을 마치고 귀환하는데 까지 걸린 시간은 4시간 정도였고 북한 상공을 한번 가로지르는 데 걸린 시간은 최단 3분30초에서 최장 4분 40초 정도였습니다. 4분만에 한번 쓱 훑고 지나가면 대부분의 정찰목표가 파악되고 완벽을 기하기 위해 출격한 김에 모두 3번을 횡단한 것입니다. 당초 작전계획상 소요예상시간은 4시간 1분이었고 실제 작전에 걸린 시간은 4시간으로 퍼펙트한 작전이었습니다.


▲ CIA가 1차 북한정찰 당일 그 내용을 보고한 비밀전문.


▲ CIA가 1차 북한정찰을 한 뒤 3일만에 작성한 예비평가보고서.


블랙쉴드 작전 보고서를 살펴보면 보통 정찰비행이 끝난뒤 바로 필름을 CIA 본부로 수송하며, 정찰 닷새 뒤 평가회의가 열리고 정찰 열흘뒤 보고서가 작성됨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사진을 완벽히 판독한 보고서는 수백페이지 분량으로 약 3-4개월뒤에 작성됐습니다. 그러나 1차때는 정찰 당일에 푸에블로호 정박위치 등이 비밀전문을 통해 긴급보고됐고, 사흘뒤인 1월 29일 예비평가보고서가 작성된 것으로 확인돼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발신자 등 일부 내용이 생략된 채 비밀해제된 1968년 1월 26일자 전문은 푸에블로호가 원산 문평리 해군기지에 정박해 있으며 2대의 북한 초계정이 지키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또 원산공항에는 파곳(미그15 전투기) 29대, 프레스코(미그17 전투기) 25대 등 전투기 54대가 대기중이며, 원산 지대공미사일 사이트에는 6대의 발사대에 미사일이 장착돼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1월 29일 작성된 예비평가보고서에는 정찰지역의 90%가 구름이 없는 맑은 날씨로 선명한 화질의 사진을 많이 확보했으며 공군이나 해군의 비정상적 이동상황은 포착되지 않았다고 기재돼 있습니다. 또 비무장지대의 한국군과 북한군 상황도 잘 포착됐으며, 북한군이 비무장지대안이나 인접지역에서 지상군을 이동시키는 모습은 없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푸에블로호는 파손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으며, 공군, 해군, 철도 및 도로상황, 지대공미사일, 해안방어미사일, 산업동향 등을 분야별로 보고, 북한공습을 염두에 둔 정찰임을 시사했습니다.

이날 작전에 투입된 정찰기는 CIA가 운영하던 12대의 A-12 초음속정찰기 중 1대로 1967년 5월 22일부터 일본 오키나와의 카데나 공군기지에 배치돼 주로 베트남 정찰임무에 투입되던 상황이었습니다. 이 정찰기는 SR-71의 직전 모델로 속도가 마하 3.25, 시속 3560 킬로미터 달하는 초음속 정찰기로, 전체 길이는 31미터, 날개는 17미터, 높이가 5.6미터이며, 조종사 1명이 조종은 물론 정찰장비작동까지 책임집니다.

그러나 1차작전 직후 중국이 블랙쉴드 투입사실을 포착, 정찰기를 추적한 것은 물론 이를 북한에 통보했음이 CIA 정보망에 걸리면서 미 국무부는 다시 한번 이 작전에 반대입장을 표명하게 됩니다. 너무나 위험하며 중국이나 북한에 의해 격추될 경우 국제적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는 우려때문이었습니다. 이같은 우려때문이었는지 2월 14일로 예정됐던 두번째 정찰작전 BX6850은 승인을 받지 못해 결국 취소됩니다.


▲ 1968년 2월 19일 CIA 초음속정찰기의 북한정찰작전 보고서 중 북한정찰 내역 및 정찰항로.


그로부터 닷새뒤인 2월 19일 CIA는 두번째 정찰을 감행합니다. 푸에블로호에 탑승한 미해군 80여명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데다 앞서 발생한 김신조의 청와대 기습작전 등 북한의 동향이 심상치 않기 때문에 극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한반도의 안전을 위해 출격한 것입니다. 특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푸에블로호에 탑재된 첨단정찰장비였습니다. CIA가 1968년 2월 27일 작성한 일급비밀보고서에 따르면 이 정찰비행의 작전명은 BX6853으로 북한을 2번 횡단했으며 구름이 많이 끼여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 작전에서 75개의 정찰목표중 65개를 탐지하고 코미렉스 목표 120개중 68개를 커버했으나, 보너스타켓은 88개를 포착하는데 그쳤으며, 구름에 가려져 푸에블로호를 촬영하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남쪽지역 5분의 2를 정찰하는데 성공했으며 산악지역만 눈과 안개 등으로 사진판독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정찰기는 이날 오전 10시59분 일본 오키나와 카데나 공군기지를 출발, 오후 2시 38분 귀환, 첫번째 정찰때보다 20분 정도 시간이 단축됐습니다. 출발 때는 B52의 이륙시간과 맞물려 당초 계획보다 6분 일찍 떠난 것으로 기재돼 있습니다. 이때는 12시 6분 1초, 1시 51분30초 등 두번에 걸쳐 북한 상공에 진입, 두차례 횡단하며 정찰했고 한번 횡단에 걸린 시간은 3분 50초, 5분20초 정도였습니다. 또 2차 정찰때는 CIA 본부로 보낸 필름이 다른 부서로 전달돼 필름이 분실된 것으로 오인,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 1968년 5월 6일 CIA 초음속 정찰기의 북한정찰작전 보고서 중 북한정찰 내역 및 정찰항로.


그 이후 4월 27일 BX6857 작전이 계획됐으나 승인을 얻지 못해 취소됐고 5월 6일 BX6858작전이 실시됩니다. 다섯번째 작전이지만 실제 실행된 작전으로는 세번째가 됩니다. CIA가 1968년 5월 15일 작성한 일급비밀보고서에는 이날 오전 10시 카데나공군기지를 이륙, 오후 2시 30분에 귀환함으로써 3시 30분이 걸렸습니다. 이 작전에서 정찰목표 77개중 66개를 커버하는데 성공했고 코미렉스 타겟 125개중 68개, 즉 절반 정도를 정찰했습니다. 또 보너스 타켓은 30개 정찰에 그쳤으며 구름으로 인해 50%만 커버됐다고 설명돼 있습니다. 또 3차 출격은 비행전 브리핑보다 기상상태가 더 나빠서 1차 북한횡단때 구름이 20% 정도, 2차 정찰때는 구름이 30% 정도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차때는 정찰필름 분실소동이 있었지만 3차때는 일본에서 앤드류스공군기지로 필름을 가져갈 수송기배치가 정비관계로 지연돼 민간항공기로 긴급수송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바로 이 한반도에 대한 세번째 정찰작전이 1957년부터 시작된 A-12기를 이용한 마지막 임무였습니다. 이 작전을 끝으로 A-12기는 퇴역하고 CIA는 SR-71, 이른바 블랙버드를 투압합니다.


▲ 왼쪽부터 잭 윅스, 프랭크 머레이, 잭 레이튼./Roadrunners Internationale


▲ 록히드사도 지난 2010년 4월 A-12RL 조종사를 초청, 그들의 노고에 감사를 표했다. 사진 맨 왼쪽 프랭크 머레이, 사진 맨 오른쪽 잭 레이튼./Roadrunners Internationale


이 작전은 CIA가 주관함에 따라 조종사들은 모두 CIA 소속이었습니다. 1968년 1월 26일 첫 정찰에 성공한 조종사는 잭 윅스(JACK WEEKS), 2월 두번째 작전에 투입된 조종사는 프랭크 머레이(FRANK MURRAY), 5월 세번째 정찰에는 잭 레이튼(JACK LAYTON)이 투입됐습니다. 공군등에서 경험을 쌓은 훌륭한 조종사들이었지만 목숨을 건 위험한 작전이었고, 실제 첫번째 작전에 투입됐던 잭 윅스는 한국 정찰 4개월여만인 6월 5일 비행 도중에 추락,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1967년 5월 CIA 정찰기가 오키나와에 배치된 이래 A-12기가 수행한 정찰작전은 블랙쉴드 작전으로 불리며, 모두 22회 수행됐고 이중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베트남 정찰이 19회, 북한정찰이 세차례였습니다.


▲ CIA는 창설 60주년을 맞아 2007년 9월 19일 초음속 정찰기인 A-12기의 조종사 프랭크 머레이 등을 초청해 노고에 감사를 표시했다.


미국은 이들 조종사들을 전쟁영웅으로 추앙하며 깍듯한 예를 다하고 있습니다. CIA는 1968년 6월 22일 이 작전에 투입됐던 조종사 6명을 모두 초청, 이들에게 훈장을 수여했습니다. 같은 달 초 사망한 잭 윅스 조종사에게도 훈장이 추서됐고 미망인이 참석해 받았습니다. CIA는 창설 60주년을 맞아 지난 2007년 9월 19일 다시 한번 이들 전쟁영웅들을 CIA 본부로 초청, A-12 기념식을 열고 이들의 노고에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또 A-12기 제작회사인 록히드사도 지난 2010년 이들 노병을 초청, 감사를 전했으며, CSPAN등 주요방송은 이들의 다큐멘터리를 제작, 방영하기도 했습니다. CIA 본부 로비에는 임무수행 중 사망한 잭 윅스 조종사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푸에블로호피랍사건 3일 뒤인 1968년 1월 26일
CIA 초음속 정찰기의 북한정찰작전 보고서


 

 

 

 

 

 

 

출처- 오늘, 아름다운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