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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사

■西安피라미드에 관한 탐사추적■ 증보완결판

■西安피라미드에 관한 탐사추적■ 증보완결판


⊙서안피라미총300여개의 구글어스영상⊙4분


이많은 미스테리한 피라미드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냥 중국왕들의 무덤일까?
그 비밀을 심층추적해본다!!

▓西安피라미드는 한20여년전부터 네티즌들의 화두가 되었읍니다. 급기야 MBC서프라이즈에서 다루기도 하였읍니다!!
일단 그때 동영상을 보시죠!!! 5분 # #


⊙이집트문명과 연관성⊙
⊙ 최초의 항공사진1945년⊙
⊙ 오리온 별자리배열⊙

●서안 피라미드의 발견●
⊙ 서안의 위치위성사진⊙

본인(콘스탄틴)은 1999년도에 인터넷에서 西安피라미드를 처음으로 알았읍니다!!
묘한 충격과 호기심이 발동하던 차에 2000년도에 직접서안을 방문하여 서안구경을 처음하면서 진시왕릉 구경갔다가 차를 대절하여
함양지역을 둘러 보았읍니다!! 저런피라미드가 즐비하게 정말 있었읍니다!!

당시로써는 중국서안지역의 초행길이고 면밀하게는 둘러보진 못했읍니다!!
그당시 찍은 사진은 필림카메라로 직접찍었는데 현상해서 보관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분실한것인지 찾질 못하겠읍니다.
대신 비슷한시기에 찍은것으로 보이는 사진을 올리겠읍니다!!
제가 이쪽을 둘러본후 느낀점은 이런 피라미드들이 수없이 있었읍니다.
여기뿐만이 아니고 서안동쪽지역으로 부터 낙앙을 지나 鄭州쪽으로 가는 열차창밖내내 저런피라밋이 한나절 계속해서 보였읍니다.
중국공안들의 저지같은것은 없었고 그냥가면 볼수도 사진찍을수도 있읍니다!!
⊙ 서안에서 정주를 지나 낙양인근까지 피리미드는 있었다⊙

●중국한나라무덤이라 구라치는 중국당국●
여기보면 무덤인듯이 망부석이나 양들석상을 세워놓았는데 모택동이후에 세워눟은것이라 한다!!
피라미드주변에 최근에 만들어 설치한듯한 깨끗한 표면의 석상들이 듬성듬성설치되어 있다!!

●한나라시대 경제무덤의 이름 한양릉(漢陽陵)●

최근에 서안피라미드중에 허름한것하나골라 중국당국은 비밀리에 발굴해서 대대적으로 보도 했다!
서안피라미드를 너무숨기고 있으니 깨름찍해서 인지 그수많은 피라미드중 하나를 골라 발굴하여 공개했고 漢陽陵이라 이름붙히고 박물관도 만들어 공개하고 있다!!
그무덤이름이 한양릉이다
조선의 수도 한양 아닌가?
조선이 漢나라를 계승해서 수도漢陽이라고 했는데 漢나라문제는 차차고찰하기로 한다!!

중국당국이 서안피라미드를 한나라시대의 무덤으로 만드는 작업이 시작된것으로 보인다!!
그역사공정이 탐원공정(探源工呈)이다!!

일반인들은 동북공정은 알아도 탐원공정은 생소할것이다!!
서안피라미드는 중원탐원공정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서안피라미드증에 한섹타를 지정해서 한나라陵源이라 칭한다!!
즐비하게 무덤이름을 붙힌다!!

● 한나라경제의 무덤이라는 한양릉박물관●

수많은 피라미드중에 중국당국이 공식적으로 발굴공개한 피라미드는 딱2개이다!!
하나는 진시황릉과 또하나는 漢경제무덤 한양릉 나머지는 언급도 없다!!

중국中原지역에서 수많은 피라미드들 중에 공식발굴한것은 진시왕릉과 漢경제릉이다!!
진시왕릉은 세계적인 관광지로 부상해서 저도 3번방문한적이 있읍니다!
문제는 한나라경제릉인데 무덤발굴부장품이나 규모에서는 굉장한데 중국당국에서는 홍보를 별로 하지 않는 느낌이다!!
머리에 정상위치에 상투를 하고 있다!!
주로 양꼭두를 매장했다!!"
무덤속의 토용이다!
원래 옷도 있었는데 썩어 없어 졌다고 한다!!
무덤봉분 피라미드하나에 나무심고 해서 왕릉처럼 꾸밈!!
한나라식건물을 최근에 세움
비석을 세움 西漢 양릉(한양릉)이라고 못박음.
처음에는 한양릉이라고 부르다가 조선한양을 연상시킨다는 여론에 따라 陽陵(양릉)이라고 씀.
한양박물관== 주로 토용을 전시해놓음
진시왕릉과 비슷하다는것을 강조하려는듯~~~
漢宣帝杜陵이라고 써있었는데 딱봐도 나타나듯이 최근1950년대쯤 세운것으로 보인다!!!
⊙한양릉토용의 복식복원⊙
이런복식은 한눈에 조선계 복식임을 알수있다!
⊙고구려무용총의 장삼과 비슷하다!!⊙
⊙ 왕의 행렬 재현⊙

♥탐사보고 분석♥

1960년대 "장문구"라는 탐사대표단장의 생생한증언을 통하여 서안피라미드의 주인공의 실체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1963년 비로소 중공정부는 서안피라미드에 대하여 인식하기 시작하여 발굴탐사단을 보낸다!
1950년대는 49년 중공모택동정부 수립후에 얼마되지 않아서 경황이 없었고 1950년 한국전쟁에 지원군을 보내 국가적으로 신경쓸 틈이 없어 보인다.

또한 1958년에 중공정부의 티벳트침공사태로 50년대 10년간은 아수라장의 중국대륙이었다.
60년대가 시작해서 중공이 안정을 찾은후에 서안에 발굴탐사단을 보낸것이다!!
발굴탐사단이 발견한것은 벽화 여러개의 문자중에도 한국한글, 조각류6200여점 맷돌, 절구, 솥 배추김치(백김치) 청동검 금관
상투머리를한 시신등 3000여점등 을 발견했다고한다!!

♥63년 서안피라미드발굴품들 추정♥

★백김치★
몇천년된 피라미드중에서 백김치가 발견되었다는것은 미스테리이다! 어떻게 썪지도 않았을까?
그러나 <피라미드효과>를 알면 의문을 약간이나마 풀수있다!!
피라미드속에서는 시체도 잘썩지 않고 음식물도 부패가 잘않된다는것이 피라미드효과이다!!

★청동검★
청동검등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런 청동검은 주로 한반도와 남만주지방에서 발견되는데 특이하게도 서안지역피라미드안에서 나왔다!!
이것은 청동검은 일개의 생활도구가 아니고 특수한계급의 神異적인 靈物임을 증명하는것으로 볼수 있다!!
그러므로 남만주와 한반도땅은 청동검이 많이 발견되므로 오히려 서안지역보다도 특이한땅이라 볼수 있다!!

★맷돌과 절구★
맷돌과 절구도 발견

이도구는 물론 한반도인만의 도구는 아니다. 전유라시아에서 발견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주로 남중국소수민족들이 사용하고 있다.
운남성지역에서 많이 쓰고 있는데 문제는 중국한족들은 별로 쓰질않는다는데 있다!!

★금관★
이런금관도 나왔다!!
이것도 古아시아시대부터 특수한 샤만계급의 표식이다. 경상도지역에서 발견된다고 신라유물만이 아닌것이다.
신라시대이전부터 이런 시베리아샤만식 冠은 역사가 오랜된것이다!!

★한글형태의 문자★
이런 가림토문자와 같은 한국식 문자가 나왔다는것은 소위 훈민정음의 역사는 무려10,000년전으로 올라간다는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흑피옥시대에도 한글과 같은 문자가 기록되어 있었다.
이번 본학회 강연회에서도 증명되다시피 흑피옥시대인 1만년전유물에도 한글가림토가 세겨져 있었다.
이런 가림토문자류의 한글문자가 서안피라미드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상투머리를한 시신★

몇천년된것이 되어서 나온시신이면 시신은 없고 유골이 있어야 맞당하나 시신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 여기서 나온것은 시신이 맞다!!
즉 "미이라" 이다!!
피라미드효과 때문에 시신은 유골로 변하지 않고 미이라로 발견된 완곡한 표현이 "시신"이다!!
2800여년전의 신강성출토 미이라 <비교용사진>
이런 상투를 하고 있었다고한다.
역시 머리카락이 부패되지 않은것을 보면 미이라가 틀림없다!!
조선전통상투머리
타클라마칸출토미이라
누란의 미녀 미이라
상투머리도 凡유라시아적인 풍습이다.
그러나 중국한족은 상투를 하지 않는다!!


★벽화★

63년당시 서안피라미드에서 발견된 벽화가 어떤것이 었나는 전해지질 않는다!! 그러나 최근 중국당국이 서안피라미드를 비밀리에 발굴해 일부가 유포된 사진이 있다.
이사진을 통하여 당시 발견된 벽화형태를 짐작해볼수 있다!!
☆서안에서 발굴조사된 피라미드의 벽화☆

전체적인 복식의 모습은 조선전통의 투피스식 한복을 연상케한다!!
또다른 벽화
삼국시대쯤의 사극에서 많이 나오는 복식과 머리모양이다
☆사극 연계소문에서 나오는 복식과 머리모양☆

★결론★

이상 63년도 당시의 발굴에 참여했다가 임종전에 진실을 토로한 故장문구씨의 증언을 토대로 발견된 유물들을 대강 살펴보았다.
이 유물들을 토대로 피라미드축조연대와 축조주인공을 살펴보면 축조연대는 대략 5000년전이상 올라간다고 볼수 있다.
그럼 여기에 나오는 유품들중 청동기가 나왔다고 볼때 이런청동기는 4~5000년전것으로 대략 기존학계에서도 짐작하기 때문이다!!
4000년이후에는 청동기유물이 점차로 없어진다.
왜냐하면 청동기의 주성분인 "주석"이 전세계적으로 고갈되고 철기시대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서안피라미드의 겉에 입혀진 표피를 제거한 모습이다.
이러한 석조건축의 바탕위에 후대에 표피를 입혔을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표피를 입힌후에도 수쳔년동안 저렇게 각잡힌 모습을 유지했던것도 대단한 기술이다!!
아마도 超과학적인 기법이 동원되었을것이다!!

축조주인공이 누구냐? 는것은 당시 장문구씨의 증언에 답이 있다.
그 답을 직접들어 보면서 이번장을 마친다!!!

"이유적은 우리짱꼴라유적이 아니야!!
한족문명以前에 朝鮮유적이야"


출처:: 대조선삼한역사학회


댓글


★ 해마다 심해지는 이 무더위 속에서,
분단이념의 고정관념과 신라 중심의 역사관에 갇힌 남한의 [우물안개구리] 들은

앞으로는 삼복더위에도 서늘한 만주와 서안으로 진출하여 조상이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반도의 남반부에 갇혀 살아온 우리는 너무 쪼잔해요 !!!


★ 저 수많은 피라밋은 아마도 틀림없이 명당혈에 정확히 세워졌을텐데, 저 너른 들판에서 어찌 명당혈처를 정확히 짚을 수 있었을까 !!!

아마도 피라밋이 서 있는 곳 마다, 피라밋이 건축되기 전에는 암반의 야산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평지에 솟은 야산에는 정상부위 ㅡ 그러니까 한 가운데의 중심에 명당혈처가 생긴다고 풍수지리에서는 말하죠 전문용어로 이런 경우의 혈처를 [돌혈] 이라고 해요

[서안 일대] 뿐 아니라 [이집트 기자] 피라밋도 [석회암 야산] 을 깎아서 건축되었음을 현장에 가 보면 확인할 수 있지요 그 많은 [석회암[ 을 어디서 가져왔을지 의문을 갖지만 ㅡ


◆◆ 제가 세워보는 가설에 의하면, 기자 피라밋에 사용된 석회암은 어쩌면 그 기반을 이루고 있던 야산을 깎아서 자른 것 일 수 있읍니다

그러니까 서안의 수많은 피라밋도 어쩌면 암반으로 된 야산을 깎아서 그때 나온 돌을 잘라서 쌓은 것 일 수 있읍니다 ◆◆


당연히 피라밋의 한가운데는 명당혈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중심이므로, 시신이나 부장품이 잘 보존될 수 있었다고 봅니다


◆◆ 풍수지리의 고전, [인자수지] 에서는 [지상의 산] 들은 [우주의 별들의 작용으로] 생겼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지구물리학으로 이해하면 이렇습니다 지구 위의 산들은 용암이 솟아오르거나 습곡작용에 의해 생겼는데, 지구 중심부의 용융금속과 용융암석의 회전이나 대류운동에 우주의 별들의 중력파가 반드시 영향을 주었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기자의 피라밋이나 서안의 피라밋의 [오리온좌] 를 닮은 배열은 ㅡ

일부러 그렇게 했을 수도 있지만, 하늘의 별들의 중력파가 주물러서 만든 산 들의 배치 그대로의 야산을 깎고 돌을 잘라서 피라밋을 건축했을 가능성도 있어요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가설이므로, 현장에 가서 지기를 조사해 보면 확인할 수 있다고 봅니다 ◆◆


[피라밋 파워] 에 대해서는 구조 때문일 뿐 아니라, 애당초 피라밋을 [명당혈] 에 건축했기 때문이 더 유력하다고 봅니다

[피라밋 파워] 를 주장했던 프랑스의 연구가들은 명당혈에서 감지되는 미지의 기운이 어떠한지를 몰랐기 때문에, [피라밋의 구조] 만 만들면 같은 효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하여, 80년대의 한때에 [사각뿔 구조물] 이 유행했었죠

실제로 대명당 혈에 위치한 아파트로 이사간 주부의 경험담에 의하면 냉장고에서 꺼내어 부엌의 평상에 올려놓은 음식이 잘 상하지 않는다는군요

5백년, 천년된 은행나무가 서 있는 위치도 예외없이 모두 명당혈처 이지요


♥ 그러므로 서안 일대의 몇만개가 넘는 크고작은 피라밋은 ㅡ 모두다 크고작은 [바위 산] 을 깎은 혈처에 세워진 것으로 보여집니다

[피라밋 바닥의 기초] 가 [암반이 아니고 퇴적토] 라면, 절대로 그토록 오랜 세월을 버틸 수가 없고, [명당혈처의 기운] 도 없으므로 부장품이나 시신이 보존되어 미이라가 될 수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