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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정부

예수회 3부 - 세계정부의 예수회 버전. 바티칸2

1773년 교황청이 예수회를 폐지한다.

예수회 권력이 강한것도 있었지만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다. 바티칸은 그 땅도 집도 없는 그저 절만 있던 곳.

샤를로만 대제 그의 아버지 피핀. 피핀이 754년에 로마를 포함해서 22개의 영지를 교회에 준다. 교황이 자기를 카로링더 새로운 왕으로 만들어 줌. 정신적 종교적 힘.

고마워서 영지를 하산한다. 로마부터 페레라까지. 이렇게 해서 교황청 살림살이가 시작된다. 그게 천년이 넘어가면 교황 용뿐만이 아니라 이제 카톨릭 각 교회의 십일조 그리고 6세기부터 가끔씩 존재했던 중죄인들에 대한 면죄부. 대 귀족이 죄를 저지러면 면죄로 돈을 받는다.

 

특별 후원금- 불우이웃돕기(교인들에게 받음)

부동산 대여 - 월세받음

교구의 농산물 판매 - 교구에서 나오는 농산물을 판매해 돈을 범.

관세 & 통과세 - 관세, 통관세. 돈이 많아짐.

 

16세기 이래 예수회가 교구를 개척해 나아가는데 이게 교황청에 있어서는 추가적인 부를 가져다 주는 일이었다. 교황청 입장에서 예수회의 교구를 확보하니 엄청난 돈은 아니지만 돈이 나오니 좋은 상황이었다. 여기서 나온 돈으로 유럽의 왕실한테 기본적인 재정도 보탬을 줌.

그러니까 교황청은 정신적인 힘만 가진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힘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특정한 왕이 카톨릭으로 개종이 덜된 곳과 전쟁을 할때 교황청으로부터 돈을 받고 전쟁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 왕정도 기본적인 재정을 교황청으로부터 받는다. 교황청으로 돈을 더 달라고 떼를 쓰기도 함.

 

근데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개신교 국가들이 떨어져 나간다. 게다가 18세기 절대왕정 하에서 유럽 국가에서 들어오는 수입이 급격하게 줄어든다. 18세기 식민지 개척은 거의 다 개척된 상태였고 반면 예수회는 독재적으로 쓸 예산이 늘어나고 있었다. 바티칸 돈을 받아 가지고 남미 등에 예수회 조직을 넓혀가고 있었고 식민지 국가의 국왕이나 국가를 운영하기도 했다. 두집 살림하는 것 같기도하고. 원래 예수회는 바티칸의 돈을 많이 썼던 조직이다.

그래서 교황청에서 계산을 해보니 이제는 버리는게 낫겠다 싶어 예수회를 폐지한다.

그런데 문제가 예수회와 장사하던 기업들도 같이 망하게 된다. 카톨릭은 재발등을 찍을 수 밖에 없는 구조.

그리고 예수회가 폐지되자마자 일루미나티를 만들어 프리메이슨, 금융세력으로 들어간것도 그들의 정치, 경제적인 선택이였다.

보통 부르주아 경제인들이 예수회를 지지하지 카톨릭을 지지하지 않았다. 개신교가 성장한 이유이기도 하다. 막스 베버의 책에 나온다.

이때 유대인들의 세력이 엄청난 성장을 하니 예수회가 유대인과 함께 할 수 밖에.

예로 19세기 중반 1840년 2월에 오스만 터키의 다마스커스에서 이탈리아 승려 한 사람과 이슬람 하인(청년)이 살해된다. 그래서 유대 게토를 조사해 오스만 경찰이 유대인 13명을 체포, 조사한다. 그러니 오스만 터키 금융을 장악하고 있던 유대은행들의 신뢰가 떨어지려하고 체포된 13명중 한명(할아버지)이 사망하자 이걸 계기로 유럽의 유대인들이 들고 일어나는데 그 수준이 엄청났다.

 

그 당시 오스만에 가장 많이 투자하고 있던 프랑스 법무장관(아돌프 크래미에유, 유대인)이 들고 일어난다. 그리고 유럽 스타 시인 Heinrich Heine가 일어남. 50년후 에밀 졸라가 "나는 고발한다"한다며 유대인 지지에 들어감.

제임스 로스 차일드(독일과 프랑스의 은행가,유대인), 모세 몬테피오레(19세기 워렌 버핏,유대인),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오스트리아 재상), 살로몬 마이어 폰 로스차일드(오스트리아 은행가) 거물들이 들고 일어나니 유럽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유럽이 아닌 오스만에서 일어난 형사사건 하나가 유럽의 전 국가의 재상들이 들고 일어나니 유대인들의 힘이 이렇게 엄청나다는걸 그때 알게 된다.

 

그래서 오스만은 유대인들을 다 풀어줘 버린다. 이게 유대인들의 힘을 보여준 첫번째 사례이다. 1840년 이때부터 유대인들을 굉장히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결국 세계 유대인 연맹까지 만들어 낸다. 이유가 막강한 권력의 유대인들을 희생자로 마케팅한다. 희생자 마케팅. 지금 21세기 버전은 차별금지법이며 희생자 마케팅이다.

다마스커스 사건으로 아돌프 그래미에유가 세계 유대인 연맹을 만들고 그 다음에 드레퓌스 사건이 벌어진다. 드레퓌스가 간첩으로 오해받았다고 희생자 마케팅을 해서 세계 시온주의자 연맹을 만든다. 이 희생자 마케팅을 이용해서 세계 유대인 연맹과 세계 시온주의자 기구를 만들어 낸다.

 

유대인이 희생자인가?

개소리. 1862년 베를린 프리메이슨을 지원자를 뽑았는데 4월과 5월 두 달사이 지원자가 수백명에 달했고 그중에 기독교인은 모두 탈락되고 유대인이 거의 전원 217명이 발탁되었다. 이때부터 프리메이슨은 유대메이슨이라 불리기 시작한다. 프리메이슨이 이제 유대인의 것이다라고 얘기가 나돌기 시작한 게 바로 1860년대이다. 얘기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실제로 프리메이슨을 유대인들이 완벽하게 장악해 버린것이다. 그 꼭대기에 이제 유대은행들이 있고 서구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프리메이슨을 완전히 장악한게 1860년이었다.

당연히 바티칸 안으로 들어갔던 예수회도 장악돼 버린다. 반대로 예수회가 장악했다고 볼수도 있다. 어차피 둘다 비선 실세는 아니고 은행가들이다.

로스 차일드, 몬테 피어레, 구겐하임, 스위스 출신 가문들, 아스터 등 이런 가문들이 비선실세이고 나머지는 꼭두각시다.

 

그래서 교황청은 원래 로스 차일드 은행 같은 은행가를 벌레 보듯해서 바티칸의 금고를 맡기지 않았다. 로스 차일드가 몇번을 제안했으나 바티칸은 거부한다.

예수회는 로스 차일드 치하에서 그의 은행 일을 맡고 있었으나 잘하지 못해 부분적으로 하다가 결국 식민지 사업을 넓혀 나간다. 복귀한 이후

미국에 본격적으로 힘을 실어 주는데 거의 모든 기관, 특히 프리메이슨 기관에 예수회 영향력을 막강하게 한다. 라이온스클럽, 로타리클럽, 보이스 카웃 등 이런게 다 예수회의 작품이다. 유대메이슨을 등에 업은 사람들의 작품이란 말이다.

특히 미국의 개신교의 큰 활동들은 거의 다 프리메이슨과 연결되고 있었고 또 프리메이슨은 유대 각종 단체들과 연결되는 즉, 예수회, 프리메이슨, 유대는 한몸이 되어서 돌아갔다.

YMCA, 침례교 이런것도 프리메이슨 영향하에 만들어지고 한국에는 1900년대 프리메이슨이 들어온다. 이들은 모두 YMCA에서 활동했다. 경석(?)에 멕아더(프리메이슨) 세워 YMCA 얼굴 걸고 활동했다. 펄벅도 그랬다.

미국의 예수회, 프리메이슨 집단은 거의 모든 조직에 들어가는 걸로 유명하고 또 조직도 만드는데 몰몬교도 프리메이슨이 만든다. 침례교도 만들었다는 얘기도 있다.

 

로스 차일드의 유대메이슨은 바티칸안으로 들어가서 뒤흔들어야 하는데 예수회 사람들이 미국에 좀 더 신경쓰는 바람에 많은 일을 못하다가 결국은 주세페 마찌니를 이용한다. 주세페 마찌니는 깡패이며 마피아 대부이다. 마피아라는 단어도 이놈때문에 만들어진다.

프리메이슨 주세페 마찌니가 교황령 국경선 지역에서 각종 난동을 일으켰다. 이 난동을 제압한다고 교황청의 제정은 엉망이 되고 로마로 쳐들어가 교황도 감금시킨다. 물론 나중에 도망치고.

프랑스 나폴레옹 3세가 쳐들어와서 이 주세페 마찌니 군대를 물리쳐 준다. 그래서 복귀를 하고 프랑스 군대에게 월급을 지급해야 하는데 재정이 바닥나 교황이 로스 차일드에게 손을 벌린다.

바티칸 1년 예산에 상응하는 5400만 프랑 융자를 얻는다. 대가로 교황청에서 지금까지 영업을 해왔던 어음 받아 온걸 75프로 할인해서 준다.

근데 실상 이런 일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교황청 내부 재무부서(예수회, 프란체스코 교단)에서 처리해야 하는데 일하지 않고 로스 차일드한테 손을 버렸다.

왜 그랬을까? 예수회가 안에서 또 조작한 거지. 피어 9세 교황이나 바티칸 추기경들이 그토록 프리메이슨, 유대인들을 공격하고 싫어했지만 정작 내부 단속은 하지 못했단 말이다.

 

또 교황청의 그 재무부는 추가적으로 1억4천만 프랑을 또 빌린다. 제임스 로스차일드에게 40년 동안 5% 장기 이자를 지불하기로 함. 다시 말해 바티칸과 로스차일드가 40년 관계를 맺었단 말이다. 1850년대부터 40년. 40년동안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재정 악화를 빌미로 바티칸 안으로 들어간 것인데 이것을 교황청이 감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1907년 프랑스 공산당 서기당 장 조레스가 원래 바티칸은 유대은행하고 같이 일했지 않았냐. 맞는 소린데 로마부터 아비뇽까지 모두 일했다고 하면 그건 조금 과장이다.

정확하게 1850년대부터 로스 차일들가 바티칸과 손을 잡고 일을 해 나갔다. 교황청은 탐탁치 않았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그 당시 유럽의 로스 차일드와 그 유대인들의 금융의 영향력이 너무나 컸기에 교황청도 어쩔수 없었다.

그래서 예수회가 이제 본격적으로 1850년 미국 식민지 개척(예수회 입장에선 미국도 식민지)일과 함께 바티칸 재무부서를 같이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누구와 함께? 당연히 로스 차일드 은행과 함께.

 

1,2차 세계 대전이 발생했어도 교황청은 침묵했다. 그리고 바티칸 예수회도 침묵했다. 교황청, 예수회는 어느쪽에도 붙지 않았다. 교황청은 세계에서 최고로 고급정보가 도착하는 곳이다. 그래서 1,2차 세계대전을 누가 일으켰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쓸데없이 한쪽편을 편들고 하지 않지 않았다.

루즈벨트와 처칠도 조금 알고 있었다. 1941년 이제 전쟁을 시작하는데 그때부터 뉴렌베르크 재판에 관한 얘기를 둘이 했었다. 둘은 독일이 폐전할 걸 다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니 뉴렌베르크 재판을 준비한 것이다. 예수회 또한 똑같았다.

전 후에 유럽이 거의 통합되어 갈 것이고 그때 금융업무가 유럽을 통일 시킬 것이다. 그래서 투자를 확대해야 되겠다. 미국이 더 커질 것이다. 등을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1942년 바티칸 투자은행을 설립한다. 바티칸 중앙은행이 아니고 바티칸 투자은행을 설립한 것이다. 원래 조금씩 투자하고 있었는데 19세기 말부터는 진짜 맛들어 바티칸 투자은행을 설립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교황청 살림살이를 세계화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마자 1946년 바로 바티칸 내부 마피아 조직을 만든다. 프로파간다 두에(Propaganda Due, P2)라고 하는 거다.

이 두 조직은 교황청 교황의 허락을 받기는 받았지만 교황이 상상하는 이상의 짓들을 해나가기 시작을 한다.

 

그 프로파간다 두에(P2)가 활동하던 당시 예수회가 빅토르 로스 차일드의 네트워크속에서 일을 했었다.

그안에서 빠져 난온 사람이 대주교 폴 마친쿠스(Paul Marcinkus)이다. 추기경인데 시가 물고 다니고 그러면서 바티칸 투자은행장을 오래도록 한다.

필리핀인가? 어디에서 비오6세가 테러를 당하는데 비오6세를 구해준다. 그는 키가 193cm에 등치도 컸는데 자기 몸으로 막아 준다. 근데 이사람이 교황에게 말을 하기

"왜 성모를 따라 갑니까? 돈을 따라 가야지"

교황은 농담인줄 알고 웃었으나 진짜 그는 성모보다 돈이었다.

 

그래서 이탈리아 마피아 돈세탁도 자기네 은행에서 했고 그 중간책이 미셸 신도나(Michele Sindona)였다. 이 돈이 세탁되어 바티칸 투자은행에서 부터 시실리아 마피아, 미국 뉴욕 마피아까지 돈이 빙글빙글 돌아가는데 이걸 신도나가 맡아서 한것이다. 각각의 길목마다 수수료가 붙었고 미국에는 65군데 비밀 계좌를 가지고 있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바티칸이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실은 폴 마친쿠스가 가지고 있는것이다.

근데 결국에 신도나의 투자가 실패해 4,000만 달러의 빚을 지게 된다. 이로 인해 경찰에 잡혀 감옥으로 가는데 프로파간다 두에가 암살, 독살시켜 버린다. 바티칸의 검은 일들은 다 여기에서 했다.

 

쉽게 얘기해서 다 예수회 사람들이 한것이다. 툭하면 예수회라고하는데 유대메이슨과 예수회의 차이가 점점 사라져 간다. 그놈이 그놈 즉, 한몸.

프로파간다 두에(P2)는 생긴지는 오래되었으나 일을 덜하고 있다가 1966년 리치오 젤리(Licio Gelli)가 여기 두목이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미국 국무부, CIA와 손잡고 유럽 흔들기 작전에 들어 간다. 글라디오(Gladio) 작전이라고 여기저기 폭탄 터트리는 거다.

대표적인 폭탄은 이탈리아 볼로냐 테러인데 85명의 시민이 사망했다. 이게 P2가 한 짓이다. 안으로는 종교 바깥으로는 독재국가를 지향했었다.

 

1981년 리치오 젤리가 살고 있던 도시 아레초(Arezzo,인생은 아름다워 영화에 나오는 도시)로 쳐들어가서 가택수사를 해서 서류를 발견하는데 그 서류에 '이탈리아를 파시스트 국가로 만들겠다.' 세상에 바티칸 내부에서 이런 짓을 하고 있었다.

프로파간다 두에 회원이 2,400명정도 인데 그중에 962명을 검찰이 밝혀내는데 밝혀진 962명 가운데 당시 이탈리아 수상 아르날도 포를라니(14대), 나중에 수상이 되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21대), 또 마찌니와 함께 이탈리아를 성립시켰던 빅토리오 엠마뉴엘 아들, 이탈리아 3대 정보국장, 내각 관료 등 다 들어가 있었다.

 

국회의원 43명, 군장성 43명, 물론 은행가 신도나, 로베르토 칼비 등. 이탈리아는 유대 대다수 국가처럼 유대메이슨 치하로 들어갔던 것이다. 프로파간다 두에(P2)는 이탈리아 뿐만이 이런게 아니다. 유럽 각국에 이런 조직들이 다 있고 예수회와 프리메이슨으로 다 연결되어 있다. 유대메이슨으로 연결.

 

신도나가 잡혀 간후 그일은 로베르토 칼비가 맡았고 교황의 묵인하에 스위스, 룩셈부르크, 리텐시타인?, 이탈리아, 니카라과, 페루, 파나마 여기서 돈이 세탁되어 바티칸 은행으로 들어간다. 알려진 것만 13억 달러였다.

 

여기에 아르헨티나 에바페론 가문도 연루가 되어 있었고 로베르토 칼비가 가지고 있던 은행이 안버지니아? 라고 하는 은행인데 은행장이며 이사람이 바티칸과 연관해서 마피아 돈뿐만 아니라 마약, 무기밀매에서 나온 돈을 모두 관리해 주었다.

이 피의 현금이 바티칸에 차곡차곡 쌓였던 것이다. 이 칼비도 신도나처럼 투자를 잘못해서 손해보고 4년 형을 받는다.

 

칼비는 파산 2주전에 바티칸에 문제가 있으니깐 요한 바오로 2세를 만나겠다고 서류를 다 준비해 가는데 요한 바오로 2세가 영접을 거절한다. 결국 1982년 런던 시티 옆 블랙 프라이어 다리에서 목메여 시체로 발견된다.

이 칼비사건의 전모가 폭로되기 12일 전에 프로파간다 두에가 암살한 거죠.

 

프로파간다 두에(P2)는 예수회, 유대메이슨 연합집단이다. 이들과 칼비와 역인 금융사건은 신자유주의 출발을 알리는 참 더러운 사건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바티칸 은행의 그 더러운 금융 일을 계속 하고 있었고 돈의 출처를 끝없이 감춰 주면서 폴란드 라흐 바웬사(Lech Walesa, 폴란드 정치인, 대통령)한테 폭동을 일으키라고 계속 돈을 넘겨주고 그 현금을 넘겨준 사람도 로베르토 칼비였다.

이게 모두 이탈리아 검찰이 밝혀낸 사건이다.

도대체 이런 드러운 일들이 어떻게 바티칸 주변에서 벌어질 수 있었을까? 그럴 환경이 만들어져 있었다.

 

1959년 요한 23세가 2차 바티칸 공의회를 만든다. 그래서 1962년부터 65년까지 전세계 추기경들을 바티칸에 모아 바티칸을 자유주의 물결로 휩쓸게 만들어 버린다. 그러면서 요한 23세가 직접 자기 입으로 유럽중심의 정책을 버리고 세계 각지의 문화를 통합하는 예수회의 스타일로 가겠다고 했다. 세계통합을 하겠다는 것이다.

현지화는 예수회의 강령이고 보편성도 예수회의 강령이다. 최대한 보편적일수록 최대한 세계화가 된다는 것이 예수회의 강령이었다. 현지에 가서 성교을 할려면 절대 위에서 내리 찍으면 안되고 현지화, adaptation 해야 된다는게 예수회 근본이었다.

 

18세기에 예수회 자체가 자유주의에 파묻혀 있었다. 그걸 그대로 바티칸 세계활동에 뒤집어 쒸운거죠.

그래서 종교, 화학, 자국어 사용, 보편 교육, 민중속으로 들어가자, 종교는 개인의 선택이다 뭐 이런 개소리를 바티칸2가 하고 있었다. 어떻게 종교를 개인선택에 남겨 두겠는가? 이것은 종교를 안하겠다는 거다.

 

그래서 동유럽과 소련 해체 프로그램이 발동된다. 이것을 Holy Alliance라 한다. 로날드 레이건과 요한 바오로 2세가 서로 만나 냉전을 굳혀왔던

1. 글라디오 작전을 일단 중지 시켜야겠다.

2. 프로파간다2를 해체해서 요한 바오로 2세에게 힘을 실어 줘서 바티칸 자체가 비선 조직처럼 활동해야 겠다.

3. 냉전 종식과 더불어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각종 단체의 입을 막겠다.

 

이것이 바티칸2의 숨겨진 목표다. 숨겨진 목표를 어떻게 알수 있냐면 1965년부터 1980년대까지 바티칸이 해온 일을 보면 알수 있다. 철두철미하게 신자유주의적이고 세계화주의적으로 정책을 만들어 간 것이다. 그것이 결국 글로벌 거버넌스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이 모든 사건과 사실은 당시 전 세계 언론에서 대서특필된 거다. 프로파간다 두에(P2) 사건, 로베르토 칼비 사건, 신도나 사건, 폴 마친쿠스 사건. 홀리 얼라이언스, 타임지가 아주 정확하게 말하며 이게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소련을 해체하겠다는 소리다.

 

홀리 얼라이언스가 레흐 바웬사한테 돈을 주어 동유럽의 자유물결을 일으키겠다는 거다.

1970년대 말까지 서구언론이 진실을 추구하기는 했어도 이 프로파간다 두에 대한 정보 유출 양이 너무너무 많았다. 왜 이렇게 전세계 언론을 들쑤셨을까?

바티칸, 이탈리아 마피아, 나토, CIA의 커넥션, 프로파간다 두에, 이걸 정리하고자 싶은 사람들이 그랬겠죠. 과연 누가 정리하고 싶었을까? 로스 차일드일까? 교황일까?

이 이야기는 원래 레이건과 요한 바오로 2세가 어떻게 소련을 붕괴시켰는지. 또 거기에 칼기 사건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아는 사람만 안다.

 

 

출처 - 자주인 라디오 https://www.youtube.com/watch?v=CzmW0kEdzW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