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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대한제국칙령41호로본 구한말역사의진실♥1편



♥대한제국칙령41호로본 구한말역사의진실♥1편


일단 EBS방송에서 만든 e채널다큐를 유심히 보아주십시요. (5:19분)


여기의 내용을 보면 1900년 10월25일 한 여자아이가 실종되었는데 그날이 일본군이 한반도서울로 진주해서
홍제동쯤에서 사격훈련을 해서 여자아이가 총맞아 죽은듯한 늬앙스를 풍기며 시작한다!!

홍제원은 제도권역사에서 중국사신들이 묵었던 여관인데 지금 서울홍제동에 있었다고 한다.
홍제동이면 서울 한복판도 아닌것이다!!


☆서울서대문구 홍제동에 홍제원터에 비석☆


일본군이 진주해서 우리가 만든 우리의 소유인 경부선 경의선철도를 탈취에서 이권을 누리고 있다는것 쯤으로 이해시킨다!
1900년 10월25일 서울에서 일본군은 진주하여 사격연습을하고 고종황제는 10월25일 울릉도를 울도로 개명하고 도감을철치한다는 칙령41호를 내린다라는것이다.
그러니까 서울로 진주한 일본군에 대한 고종황제의 칙령은 없고 먼 울릉도에 관한 칙령을 내린다??

일본군이 진주해서 경부선과 경의선이권을 빼았기는 중차대한 시점에 한가로이 먼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칙령이나 내리고 앉아 있는 고종황제란다!!!! 이게 사실이라면 고종은 미친놈이다!!

☆이사진이 고종황제란다!☆


★구한말 역사라고 배우는 근거★
우리가 교과서나 방송다큐에 흔히들보는 증거자료들을보면 다음과 같은자료를 들이 대면서 망해가는 대한제국(조선)을 증거합니다. 우리는 이런자료들을 보고 "망할놈의 조선 빨리 망해야지 일본에게던 누구던 망할수 밖에 없는 나라야"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자료들은 일제의 조선사편수회를 필두로 고서간행회-조선문서제작소등에서 마치 한반도에 朝鮮이 있었는데 그마지막 舊한말의 상황을 시나리오 쓰듯이 마구 써놓은 자료들입니다.

일본이 철수할때 고스란히 규장각등에 남고 놓고 떠나간후 그의 추종자(이병도와 제자들)들이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가짜역사를 우리에게 각인시키는 수단과 증거물로 활용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EBS 칙령41호 다큐철저분석♥

다큐에서는 1900년의 일본군서울입성및 사격훈련을 말하고 있읍니다. 그와중에 고종은 아무것도 안하고 나무인형처럼 있었다고 말합니다. 사실일까요???

기존역사에 의하면 일본군은 인천제물포항에서 아무런 저항없이 상륙하여 서울에 입성하는것으로 되어 있읍니다.
외국에서는 일본軍서울입성을 1903년末로 보고 있읍니다!!
그래서 1904년 프랑스일간지에 그장면이 실려 있읍니다!!

☆1904년에 실린 일본軍서울진주장면 일러스트☆


백번양보하여 1900년10월에 서울에 입성했다고 칩시다!!
그럼 서울 경복궁에는 고종이 있어야 되는데 과연 1900년에 고종황제가 기거할만한 궁이 있었을까요?
1902년에 일본인사진작가가 찍은 유명한 경복궁사진을 보시겠읍니다!!

잡초만 무성한 귀곡산장이다!!



광화문도 잡풀투성이!!


여기에 고종황제가 있으면서 집정을하고
일본군이 들어 오는데 멍청히 아무말못하고 한가로이 울릉도칙령이나 내리고 있을까요?
앞뒤가 않맞는 이야기 입니다!!


홍제원이라고 하니 지금의 홍제동을 말하는것 같읍니다.
황성신문에서 기사가 난것이니 사실일수 있읍니다.

그럼 황성신문은 무엇일까? 황성신문은 1898년에 창간하여 1910년에 폐간된것으로 되어 있는데~~



황성신문은 공식적으로 12년간 발간되었던 신문인데
국내에 몇장 발견않되고 있읍니다.

몇장 않되는 신문내용을 보면 황성신문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를 유추해보면 황제국 백성들이 한반도에 유폐되고 있는시점에 그들의 황제국 백성을 상기시키고 위무하며 본래 지식인이었던 유폐조선인들에게 국제소식을 전해주고자 발간되었다고 보여집니다.
1900년1월부터 국제전보를 이용하여 국제소식을 전해주었다고 합니다.


☆백과사전에 있는 내용☆


위내용에서 붉은색 밑줄친부분을 보면 창간 만1년 반만에 황성신문은 1900년1월5일부터 외신을 계제하는 란을 신설하고 전특체(電特遞)라는 무선통신기구를 사용하여 외신들을 직접수신 받는것으로 되어있다.

이를 위해서 영국의 로이터 통신과 계약도 체결된다.
그러니까...
마르코니의 무선통신이 발명된해가 1895년인데 불과 만4년후에 당시로써는 최첨단통신수단인 무선통신기기를 황성신문은 채택운용하고 있는것이다!!

1895년 마르코니의 무선통신 발명직후 젊은사진

☆마르코니의 무선통신장면 1905년경사진☆이탈리아


두사진을 비교해보면 최소10년차이는 난다!!


1900년1월이면 새밀레니엄이 시작되는 첫해1월이다.
당시 무선통신기기는 최첨단통신수단으로 발명국이탈리아 영국 미국정도의 나라만 군통신장비로 써 운용하던 시절이었다!!

이때 홀연히 황성신문이 영국로이터통신과 계약으로 서울에 들여 왔다는것이다!!
한반도서울은 그만큼 중요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방증일수 있다!!??
사실 열도일본軍도 이런무선통신을 이용했다고 볼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황성신문은 그당시 어떤 국제적인 특혜에 힘입어 창간되었다고 볼수 있다.
한반도 서울등지에 유폐된 조선황제국 백성들을 위무고져 창간되었다고 볼수 있다.
한반도 서울에 황제가 거할만한 거처가 없었음에도 서울한성백성들은 황제국백성이란 프라이드가 강했다!!
록 유폐되었지만~~~


EBS다큐에서는 홍제원에서 일본군이 마구총을 쏘아 되어서 공포를 조성했다고 했다!!
여기서 서울에 진주하며 마구총을 쏘던 일본군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그냥 열도일본군이었을까?

여기서 독일에서 발견된 코리아엽서를 보자!!

독일엽서에서 서울풍광을 보여주면서 코리아군의 모습이라고 써있다!!

구한말 우리조선군이 이런군북을 착용한적이 있던가?
그렇다!!
이 복장이 코리아大朝鮮신식군대의 모습이다!!

분명히 코리아병사라고 써있다!!


코리아병사는 신식군복을 입고 여러전쟁에 참전했었다. 그러나 이런병사들이 모두 일본군으로 치환되어있다!!

한반도서울에 진주한 병사가 비록 열도인종을 포함했을 지라도 이들은 大朝鮮예하부대일수 있다.

어딘가에 존재했던 대조선이 그산하 제후부대를 조선신식군복을 입혀서 파견했을 정황에 주목해야 한다!!!!

★경의선 경부선의 의문점★


이 다큐에서는 1900년에 이미 철도가 있었는데 일본군이 진주하여 마구 총을 쏘아대며 고종을 겁박하여 경부선 경의선을 점유했다는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경부선의 착공은 1901년이고 완공은 1904년이다

☆경부선 철도공사 사진☆


그러니까 단4년만에 서울~부산철도가 완공된다. 이런거리를 이렇게 단시간내에 완공했다는것도 의문이며 다큐상 문제의 1900년 10월에는 경부선 조차도 없었던 때인데 마치 있었던 경부선을 고종황제를 겁박하여 탈취한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역사에서 이권 이권 하는데


철도를 자기네 자본으로 공짜로 시공하는데 무슨이권이란 말인가? 있지도 않은 철도를 일본군이 탈취 했는가?

이때 열도일본이 단4년만에 서울부산철도를 연결할 기술이 있었을까?
이철도를 일본이 했다면 열도일본과 같은 궤를 써야 원칙이고 이치에 맞는다.
그러나 한반도에 설치한철도는 중간궤를 쓰고 당시 열도일본에 설치한 궤는 협궤를 썼다.
열도일본철도를 건설한 주체와 한반도철도를 건설한 주체가 다르다는 말이다!!

★경의선의 의문점★


이 다큐는 또 거짓말을 하고 있다. 1900년에 있지도 않은 경의선이 프랑스의 소유라고 주장한다.


경의선 개통식에 왜 외국인들이 많이 왔을까??


경의선은 1905년 일본이 착공하여 1906년에 완공한다고 백과사전에 나와 있다.
이게 말이되는 이야기인가?
위의 붉은색 밑줄친 부분을 보면 1906년4월3일에 용산과 신의주노선이 완공되었고 1908년에 부산--신의주 완전개통해 융희호가 달렸다고 써있다.

서울서 신의주까지 단1년만에 철도가 완성된것이다.
어떻게 이런 초특급공법이 있었단말인가?

다음편에 계속~~

출처: 대조선삼한역사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