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르트가 본 大朝鮮의 땅♥ ==최신증보판==
조선을 방문한 유대인 오페르트가 1880년에 펴낸저서 금단의 땅 (A for bidden Land) 에서 조선은 젓과 꿀이 흐르는 땅 (The land of milk and honey)라고 표현을 하고 쿠빌라이(충렬왕) 이후 가장 눈부신 동양문명을 일구었다라는 주장을 하고 있읍니다
또한 그의 책에서 테이블 타워 마운트(Table tawer mout)를 그려놓았는데 일단 보시겠읍니다
이 책에 실린 삽화는 지금의 미국 와이호밍주에 데블스 타워 (Devils tawer)와 거의 같읍니다
이런 메사(MESA)지형은 많이 있지만 삽화와 같은 지형은 지질학자에 의하면 지구에서 여기 밖에 없답니다.
그럼 오페르트가 現미국 와이호밍주을 방문하고 이런 글을 썼단말인가? 지금으로써는 그렇습니다!!
이책에서 조선의 풍물과 지형을 소개하는데 한반도라고는 도저히 믿을수 없는 내용이 가득차있읍니다
끝도 안보이는 목화밭!!
●어멀리 캠프의 조선목화밭묘사!!●
어멀리캠프는 조선은 세계 5대 목화 생산국이라함. CCR의 카튼필드라는 올드팝이생각 나는군요
■목화■
물의 양이 풍부해서 건너편까지 5킬로 되는 거대한강.
이나라 사람들은 흰옷을 입고 있는데 장이서면 野人(field man) 이라 부리우는 사람들과 교역을 하는데 야인들은 산에서 살며 무리를 지어서 이동한다
제가 볼때 이 야인이 소위 인디안 같습니다
이나라 관리란 사람들은 필요이상의 큰모자를 쓰고있다!!
▲ 위는 목화 재배 분포도
▲ 거대한모자!!
다음은 오페르트가 탐사한 경로를 추적해보았읍니다
▲ 다음은 와이호밍주 지도
이 오페르트란 유대놈은 탐사나 여행한 답시고 조선에 들어와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 간첩이라 봅니다
급기야 이놈이 사고를 칩니다
▲ 충남홍성에 있는 남연군묘. 여기는 이장해온것이거나 가묘이다!!
대원군에 아버지인 남연군 묘를 도굴하여 여러부장품을 챙겨서 도주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대조선조정에서는 발칵 뒤집혀 급기야 이놈을 현상수배를 때립니다. 결국 도망가 워싱톤으로 갑니다
▲ 벗꽃이 만개해있는 워싱턴. 역시 큰일본은 미국이다!!
●결론●
초소한 1880년 까지는 조선이 北아메리카중부와 서부쪽에 있었음을 이책을 통해 알수 있읍니다.
여기서 쿠빌라이 운운 하는데 쿠빌라이가 충렬왕과 동일인물임이 밝혀지고 있읍니다!!
테이블 마운트를 지금미국에서는 지명을 바꿔서 데블스 타워 (Devils tawer)라 부릅니다
악마의 저주를 퍼붇는것 같습니다
C CR 의 카튼 필드를 들으면서 이장을 마치겠읍니다
가사를 잘들어보세요. 택사스 비엔나 루지애나 등이 나오는데 여기가 조선전통 목화밭 같습니다
●강병규선생 댓글●
조선이 목화5번째 생산국이라고 한것은 현 한반도는 절대로 될수가없고 북미중미 일대라야 목화5번째 생산국이 가능하며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씨을 가져왔다는것은 역사조작의 헛점이 보이는 것입니다
김쌤께서 지적한 것처럼 목화는 온대 아열대가 주 분포도인데 원나라는 한대지역에 가깝기에 목화씨을 가져왔다는것 자체가 모순이며 역사조작이고 금단의나라조선에 서 오페르트는 100%동국조선인 미국을 방문한것이며 이 테이블타워마운트가 정족산 사고(사서보관장소)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화재감시탑도 우리의 사고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지금도 테이블타워마운트와 인접한 화재감시탑은 미국에서 일반인 접근금지 구역입니다
우리의 사고을 산더미처럼 보관한 정족산 사고의 고서적들 어딘가에 꼭꼭 숨기고 역사조작을 지금도하고있는 양키들 나는 정족산사고가 이곳이라 확신합니다!!
●원성훈선생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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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족산 사고"의 위작 가능성 농후!]
1910년 일제가 국권을 빼앗은 뒤부터 정족산 사고본은 태백산사고의 실록들 및 규장각의 도서들과 함께 조선총독부 학무과 분실에 이장(移藏)되었다. 이 후 1930년에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으로 옮겨진 뒤, 광복으로 경성제국대학이 서울대학교로 개편, 발전되면서 서울대학교에 옮겨 보존, 관리되고 있다.
현재 정족산사고지(鼎足山史庫址)는 정족산성 안 전등사 서쪽 높이 150m에 위치하며, 사고지의 보호철책 안쪽에는 주춧돌들이 놓여져 있다. 또한, 성내에는 수호사찰(守護寺刹)인 전등사가 사고를 보호해왔으므로 1910년 조선총독부 학무과 분실로 실록과 서적들이 옮겨질 때까지 보존될 수 있었다.
사고 건물이 언제 없어졌는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1931년에 간행된 ≪조선고적도보 朝鮮古蹟圖譜≫에 정족산사고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때를 전후해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사고 건물에 걸려 있었던 ‘장사각(藏史閣)’과 ‘선원보각(璿源寶閣)’이라 쓰인 현판이 전등사에 보존되어 있다.
* 여기에서보면, 일제강점기때 조선총독부에 넘겨지고 1930년에는 조선총독부 관할의 경성제대로 옮겨졌다고하는데,이때 조작이 충분히 가능해보임. 무려 20년 세월임.
그리고, 하필 공교롭게도 1931년 전후해서 정족산 사고가 소실되었다고 나오니 이건 뭐~~
출처:대조선삼한역사학회
콘스탄틴김-대조선을 향한 숙명적인 도전!!
한국땅에 지어놓은 조선史庫는 일제때 미뉴어쳐로 지어놓은 건물이다
조선고려의 역사가 한반도로 오면 모든것이 소꼽장난처럼 작아지는 한심한역사가 된다
고구려 백제 신라도 마찬가지~~
허서종-춘천중도 유적지가 복원되기를 기원하는 마음
그럼 오대산 사고 역시 모조 였군요. 구한말에 실화에 의해 타버렸다는데, 보관되어 있던 역사서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
★ 우리말 성씨와 이름에 이어, 아메리카 조선을 이해 시키는 강력한 귀납의 증거의 하나가 됩니다 !!
♥ 땅 이름, 산 이름, 사람 이름, 등의 언어와, 농산물, 식물, 동물, 음악, 미술, 조각 등 모든 방면의 연구가 훗날의 종합을 염두에 두고, 우리 모두가 하나씩 밝혀내 주시기 바랍니다 !!
만주개장수(이억기)
추리 = 한반도의 고인돌은 보고된것처럼 실제 그렇게 많지는 않을것이다.. 역사는 어차피 조작되었으니...
전부 아메리카에서 옴겨왔다고 추정된다..
선사유적 [ 춘천레고랜드 사업 반대 목소리…“선사유적 ] 왜 옹기종기 모아뒀나 농경사회면 밭경작지를 넓게 사용하였을것이고... 유대가 사전에 땅파기 좋은곳에 묻었다는것에
방점을두고 싶군요 ... 우연의일치 레고가 저자리를 차지하여
공사중 나왔다고 한다면 ( 한반도에서 역사의적을 둘수밖에 없는 쇠사슬이 되는것) 아니면 영원히 파묻기위한 꼼수
춘천선사유적지 지형을 조사해봐야 할것입니다...
태고적 부터 살았다면 ,,, 조금만 물이 불으면 잠수인데 그곳에서 터전을 잡을턱이 없습니다... 유적지 지하에 암반이 나오는지 형질조사를 해봐야 할것입니다...사암이 많은지 를 요 ...
아메리카에 오래된 유적물을 그대로 둔다는것은 대조선인을 제외하더라도 고대 아메리카 에 인디언들이 이런 찬란한 문화를 지녔다는것을 입증해야 하고 250년된 미국이 침탈했다는것을 세상에 들어내야 하니 선사유적유물을 미국땅에 고스란히 두어서는 골치가 아플것입니다. .... 콜롬부스 도 거짓이 들어나니까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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