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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한국 97 IMF 외환위기 및 한국경제의 미국 식민지화 과정 - 미셸 초서도브스키

아래 게시글은 원래 우리 카페 무아님이 스크랩해 온 글입니다만....

아무런 추천수도 없고, 별로 회원님들의 관심도 없는 것 같아....

정론직필이 편집하여 다시 퍼올립니다.

 

(새벽에 일어나 열심히 편집했는데....올리는 과정에 날아가버려 다시 작업을 해야 하겠네요)

 

아래 게시글 내용을 아마도 우리 국민들 대부분은 전혀 눈치도 채지 못하겠지만....그러나 정론직필 등 극소수의 알만한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아래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었지요.

 

이승만 정권 시절부터 97IMF 이전까지는 한국경제가 왜소하여 미국자본들이 관심을 두지 않아, 남한은 그저 미국의 정치

군사적 식민지에 불과했었는데.....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시절을 거치면서 재벌들의 혁혁한(?) 활동으로 남한 경제 규모가 

미국자본들이 군침을 흘릴 정도로 커져버린 것이 화근이었지요.

 

그래서 남한은 이제 군사, 정치적 미국식민지일 뿐만 아니라 미국의 경제식민지도 된 것인데.....그 과정에서 남한의 관료들이

미국의 기득권층 이익을 위해 어떤 짓을 벌이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지요.

 

정론직필이 이미 오래전부터 주장해온 터이지만....

"(외자나 외자에 장악당한 재벌에 팔아치우기 위해 공기업민영화",

"(외자와 재벌이 설칠 수 있도록규제완화" 운운을 주장하는 자들은 모두

매국노 세력들이라고 보면 된다는 점을 아래 글은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아래 글은 미국이 그동안 남한에서 벌여온 짓들이 어떤 내용들이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미국의 의도가 무엇인지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정론직필이 항상 주장하듯이....미국이나 또는 소위 "일루미나티" 운운이 결코 전지전능의 존재들은 아니라는 사실...

 

그래서 아래 필자인 초서도브스키는 미국의 의도를 잘 설명해주고는 있지만 그러나 현재 한반도 상황 김대중의 진정한 의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점.

 

,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현재 한반도 상황은....결코 미국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지 않으며, 도리어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현재 남한경제에는 미국자본들의 빨대가 너무나 많이 꽂혀 있어 남한민중들의 삶이 결국 세월이 갈 수록 피폐해질 

수 밖에 없는데...

 

그러나 연방제통일만이 바로 그 미국자본들의 빨대를 뽑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 미국은 김대중을 이용하여 북한마저도 

미국의 군사, 경제 식민지로 만들고자 시도해왔지만.....

 

그러나 미안하지만미국의 그런 사악한 의도는 현재 실패의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지요. 백범 김구 선생의 

길을 가고자 했던 김대중은 아마도 그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래서 부시가 집권하자마자 남북관계를 철저히 차단하고자 시도했지만 그러나 김대중은 부시의 온갖 수모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를 끝까지 밀고가고자 고집을 부리며 미국을 설득했다는 사실....그 과정에 사실 약간의 미국에 대한 거짓말도 

있었다고 봅니다. 예컨대남북관계가 좋아져야 북한의 미국에 대한 도발도 적어질 것이라는 김대중의 논리 미국을 

속여서라도 남북관계를 김구선생이 하고자 했던 관계로 가져가고자 했다고 봅니다.

 

, 김구 선생의 의도란.....남북이 화해협력으로 외세를 몰아내고 남북통일을 달성하는 일입니다.

 

참고로....

 

대선 직후, 김대중이 IMF에 철저히 추종하겠다는 선언을 했지만... 만일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김대중은 아마도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봅니다.

 

암튼, 나중에 김대중은 IMF 와 누차에 걸친 재협상을 통하여 IMF의 너무 가혹한 짓들을 상당 부분 완화시켰음도

잘 알려진 일이지요.(더 강력히 반발하고, 미국자본의 경제예속화 작업을 완화시켰으면 더 좋았겠지만....그러나 당시 

상황에서 김대중이 그 이상은 아마 어려웠을 겁니다. 만일 당시 이회창이었더라면 아마 빤스까지 벗어주었을런지도 

모를 일입니다.)

 

암튼, 아래 글 중 중요 부분들을 색칠하는 등으로 편집 작업을 더 하겠습니다.

 



[스크랩] 한국 97 IMF 외환위기, - 미셸 초서도브스키|정치 경제 사회문제

 

無我|등급변경|조회 936|추천 0|2018.11.17. 15:14

 

 

 

http://cafe.daum.net/sisa-1/dqFF/3509

 

 

이 기사는 20007월에 처음 보도되었으며, 1997-98 아시아 위기의 절정에 한국의 자본주의가 문자 그대로 강제납치당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목표는 또한 한국의 은행 시스템을 인수할 뿐만 아니라 주요 재벌 대기업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IMF 개혁은 일련의 파산과 산업 임금의 하락을 촉발시켰다.

 

 

 

선진시장경제에 적용된 IMF 프로그램의 목적한국의 국가 주권을 훼손하고, 남북통일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장기적인 목표는 북한을 서구의 기업자본에 개방하고, 북한의 값싼 노동력을 세계 시장에 개방시키는 것이었다.

그것은 1990년대 초반 미국의 경제제재 해제로 시작된 베트남과 같은 운명인 것이다.

 

반세기 이상의 기간에 북한에 가해진 치명적인 대북 경제제재와 북한에 대한 끊임없는 핵 공격의 위협은 결국

월스트리트와 IMF의 지침에 따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자유 시장"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Michel Chossudovsky, 2013 4 6

 

한국의 재식민지화 작업

서울 블랙먼데이. IMF의 한국 개입

 

미셸 초서도브스키 (Michel Chossudovsky)

 

2000 6 10

 

199711월 말에 문제 해결사인 휴버트 네이스(Hubert Neiss)가 이끄는 IMF 경제학자 팀이 신속히 서울로 몰려들었다.

그들의 임무는 한국의 경제적 체력과 안정성을 신속하게 회복할 수 있도록 멕시코 스타일의 구제 금융을 협상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중요한 판례가 될 것이었다. 가난한 제3 세계와 동유럽에나 일상적으로 사용되던 IMF의 쓰라린 경제적 처방이

선진적인 산업 경제(=남한)에 처음으로 적용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

 

워싱턴은 주한 미국 대사관과의 연락을 취해 조심스럽게 협상 테이블을 마련했다. IMF 임무가 시작되기 겨우 일주일 전에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은 IMF와의 협상을 방해한다며 자신의 재무장관(강경식)을 해임했다. 후임자는 워싱턴의 지시에 따라

임명되었다.

 

 

매우 편리하게도 새로운 협상가이자 재무장관으로 임명된 임창열(Lim Chang-yuel)IMF와 세계은행의 전직 관리였다.

IMF의 옵션 남용에 대해 반발한 김인호 대통령 경제수석보좌관즉시 해고됐다. 한국은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국제 신용을

회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임 임 재무부 장관은 워싱턴에 익숙했다. 그는 임명되자마자 전직 동료였던 IMF 부국장, 스탠리 피셔(Stanley Fischer)와 협상을 위해 워싱턴으로 건너갔다.

 

 

서울 블랙먼데이

 

정부의 IMF와의 사전 거래는 극비의 국가기밀이었다. 1121일 금요일, 정부는 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1124일 서울 블랙먼데이, 월요일의 주식시장은 IMF 긴축 조치에 대한 우려와 기업 및 은행 붕괴를 우려하며

주가가 10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임창렬 재무장관워싱턴에서의 명령을 충실히 따라 원화에 대한 추가적인 투기

공격이 가능하도록 외환시장 규제를 모두 철폐했다.

 

 

이틀 후인 1126Hubert Neiss가 이끄는 IMF 사절단이 서울의 김포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1130, 겨우 4일 만에 양측은 이미 예비 협정에 합의했다. 본 초안은 임무도착 전에 워싱턴에 있는 IMF

본부에서 작성되었다. 최종안은 이미 월스트리트와 미국 재무부와의 협의하에 결정되었으므로 한국 측의 추가적인 분석이나

협상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되었다.

 

 

 대통령 경선에 따른 팔 비틀기

 

그러나 거래는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이 나라는 대통령 선거가 시작되기 직전이었고, 야당의 좌파 후보였던 김대중은 IMF 구제 금융협정에 확고하게 반대했다. 그는 언론을 통해 여론에 경고하면서 퇴임하는 정부가 한국 경제를 대규모로 해외자본에 팔아먹는다."라고 비난했다.

 

<김대중 당선자 일산자택을 방문한 조지 소로스>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26개의 은행과 27개의 증권사 그리고 12개 보험사와 21개의 상업은행을

포함해 전체 금융부문을 55천억 원에 자유롭게 살 수 있었다. 그것은 겨우 37억 달러였다.

 

 

정치적 반전

 

겨우 2주 후,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김대중은 (IMF) 경제적 처방의 강력한 지지자가 되었다. “나는 과감하게 시장을 개방할 것이다.” “나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자신 있게 투자할 수 있도록 하겠다.” 대규모 집회에서 그는 IMF 계획에 대한 자신의 지지가 우리의 개혁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했으며, 우리는 이 위험을 기회로 삼을 것이다.“

 

 

김대중은 정치적 압력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는 과거 반체제 인사였고 정치범이었으며, 박정희와 전두환 군사정부 당시 죽을 위기에서 미군에 의해 구출되었다. 그는 민주적으로 대통령에 선출되자 정식 취임식을 앞두고 월스트리트와 워싱턴을 방문했다. 사실 워싱턴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3명의 후보자 모두에게 IMF 프로그램을 채택할 것을 요구해 놓고 있었다.

 

 

금융 협박을 통한 입법 추진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 의회에 녹색 신호를 보냈다. 의회의 특별회기가 다음 날인 1223일에 개최되었다.

IMF 협정에 관한 4가지 주요 정부 정책은 논쟁 없이 사실상 채택되었다. (미국의)금융 협박을 통해 제정된 이 법안은

기획재정부와 금융 규제 및 감독기관의 기능을 박탈 한 것이다. 한국 의회는 고무도장으로 바뀌었다. 한편 미국의 은행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월스트리트 신용 평가사 무디스의 투자자 서비스는 20개 은행을 포함해 한국 정부와 기업들의 채권

등급을 '정크 본드 (junk bond)'등급으로 하향 조정함으로써 한국의 복종에 대한 보상?을 했다.

## 정크본드 등급으로 하향됨으로써 자산가치 폭락. 해외자본 및 IMF 추종세력들은 헐값에 동산 및 부동산을 사들임.

 

 

570억 달러 구제 금융 협상 : 강도 사건의 시간표

 

19971119~ 19971224

 

1119: 퇴임하는 김영삼 대통령이 강경식 재무장관IMF와의 협상을 방해했다며 해고시킴, 재무장관은 전 IMF

사무총장 임창열이 임명된다.

 

1120: 임창열 장관은 전 동료인 스탠리 피셔 IMF 부국장과 회담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갔다.

 

1121: 한국 정부는 IMF와 협정을 맺을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신임 재무장관이 IMF와의 협상을 담당한다.

 

1124: 서울 블랙먼데이. 한국 증권시장은 IMF의 긴축정책에 대한 우려와 기업 및 은행 붕괴를 우려하여 주가가 10

만에 최저치로 추락했다.

 

1126: IMF 임무는 Hubert Neiss가 이끄는 서울에 도착한다.

- IMF는 우크라이나가 IMF 규정을 위반했다며, 우크라이나 구제 금융 지속할 것을 발표

 

1127: 극비리에 IMF 총재 한국방문 후, 한국 정부 관리들과 비밀회의 진행.

 

1130: IMF와 한국 정부는 4일간의 협상 끝에 예비 협정에 합의한다.

 

121: 합의문 초안이 한국 내각의 승인을 받기 위해 제출된다.

 

123: IMF 관리이사인 미셸 캉드쉬가 거래를 마무리하기 위해 서울에 도착한다. 미 재무차관 데이비드 립톤은

캉드쉬와의 협상에서 3명의 한국 대선 후보자 모두가 IMF 구제금융에 지지를 표명하지 않는 이상 협상이

마무리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124: 해당 협정의 최종안은 IMF 집행위원회에 의해 비준되며 총회는 570억 달러 중 210억 달러를 준비한다.

 

125: 김대중 대통령 후보는 IMF 협약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고 경제적, 사회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여론에 경고했다.

 

1218: 김대중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뒤, IMF 프로그램에 대한 절대적 지지를 즉각 선언한다.

 

1222: 미국 재무부의 데이비드 립톤 차관이 서울에 도착. 립톤은 김대중에게 노동자들의 대량 해고에 동의할 것을

 요구한다.

 

1223: 국회 특별회의가 개최된다. 국회는 IMF 구제금융에 따른 한국 정부의 4가지 주요 활동에 고무도장을 찍어준다.

 

1224: 월가 은행가들이 크리스마스이브에 긴급회의를 소집한다. 자정에 IMF는 단기 차입금이 고갈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한국에 100억 달러를 송금하는 것에 동의한다.

 

1226: 김대중 차기 대통령 당선인은 자신에게 어려운 일에 나선다. "기업들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동결하거나 삭감해야

 한다. 만일 그것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입증되면 대규모 정리해고가 불가피할 것이다."

 

 

월스트리트 은행가, 크리스마스이브에 모임

 

한국 국회는 1223일 긴급회의를 열었다. 570억 달러 규모의 거래에 관한 최종 결정이 12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뉴욕에서 은행가들의 모임 뒤에 내려졌다. Chase Manhattan, Bank America, Citicorp JP Morgan의 월스트리트 최고

재무담당자들이 뉴욕 연방 준비은행에서 회의를 소집되었다. 또한 크리스마스이브 행사에는 골드만 삭스, 리먼 브라더스,

모건 스탠리, 살로몬 스미스 바니 등 뉴욕의 5대 상업은행 대표들이 참석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이브의 자정에 은행들로부터 승인을 받으면서 IMF는 단기 부채의 부도 사태를 막기 위해 100억 달러를

한국으로 보냈다.

 

 

한국은행의 귀중품들을 털기 위해 이들은 은행 금고를 샅샅이 뒤졌다. 채권자와 투기꾼이 전리품들의 수집을 간절하게

고대했기 때문이다. 같은 기관(채권자, 투기 군, 월가)들은 일찌감치 한국 원화의 추락을 예상하고 반대매매(풋 옵션)

투기를 해둔 상태에서 IMF 구제금융으로 돈을 벌고 있었다. 그것은 사기였다.

 

 

재벌 해체

 

IMF의 구제 금융은 한국의 경제적 주권을 손상시킴으로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 아래서 사실상 식민지 정부를 확립했다. 그것은 단지 하룻밤 사이에 한국을 깊은 경기 침체로 빠뜨렸었다. 사회적 영향은 한마디로 끔찍했다. 국민들의 생활수준이 무너졌다. IMF 개혁은 실질 임금을 하락시켰고 대규모 실업을 유발했다.

 

 

 

주식시장의 붕괴와 함께 원화의 평가 절하금융계와 산업계 모두에게 치명적인 연쇄 파산을 초래했다. 숨겨진 의제는 한국의 자본주의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IMF 프로그램은 주로 재벌을 파괴하는 데 기여했다.


 

 

재벌은 하나의 지주회사를 중심으로 여러 기업들을 모은 대기업이다. 모회사는 일반적으로 한 가족에 의해 관리된다.

198840대 재벌은 총 671개의 개별 기업을 그룹화했다. 현대와 대우가 그 좋은 예이다. 그들은 자동차에서 TV 세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을 생산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재벌은 은행이 통제한다는 점이다.

 

 

 

 

현대외국 기업과의 전략적 제휴를 맺어 외국 자본에 의한 최종 인수 및 통제를 받도록 요청받았다.

월스트리트를 대신하여 IMF대우그룹 해체를 한국 정부에 요구했다. 대우그룹을 해체하고 대우 계열사 12곳의 매각을

요구한 것이다. 대우자동차는 구제되었다. 대량 해고 및 자동차 부품 공급업체 등의 연쇄부도로 한국의 자동차 산업 전체가

위기에 처해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 최대의 기업 제국인 현대의 채권단은 이 그룹의 해체를 요구했다. “현대의 붕괴를 의미하는 이른바 기업분할(spin off)로 외국자본은 현대의 수익성이 높은 자동차와 조선 등을 싼값에 인수하도록 초청받았다.

한국의 첨단 기술, 전자 및 제조업을 활용할 수 있는 세계 경기가 호황이었다. 서양 기업들은 싼 가격에 산업 자산을 매입하면서 쇼핑을 계속했다. 한국의 주가 하락과 평가 절하는 한국 자산의 달러 가격을 극적으로 낮추었다.

(당시 삼성전자 주가가 3만 원대로 하락, 달러로 20 남짓)

 


캘리포니아와 텍사스 타이쿤에서 온 구조대?

 

미국은 '곤경에 처한 한국의 은행'들을 구조하기 위해 왔다. 45천만 달러에 제일은행(KFB)의 지배 지분(51 %)이 레버리지 매입을 전문으로 하는 미국 뉴 브리지 캐피털로 이전되었다.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한 투자회사는 상업은행업무에 대해 전혀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5,000명의 직원을 보유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금융 기관 중 하나를 현대식 지점망 형태로 장악하고 있었다.


 

 

 

뉴 브리지는 계약조건에 따라 한국 정부에 제일은행에 환매 옵션(put back option)을 요구했는데, 이는 새 소유주가 매입

이전에 발생한 부실채권의 모든 손실에 대한 보상을 요구할 권리를 주장한 것이다.

 

이것이 실제로 의미하는 바는 한국 정부가 여러 차례 나누어 총 173억 원의 현금을 제일은행에 투입했다는 뜻이다.

이는 뉴 브리지 캐피털이 한국 정부에 지불 한 가격의 35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이것의 의미는 현대식 고속도로 강도의 일종이다. 뉴 브리지는 454백만 달러의 가상의 투자로 주주들로 하여금 159억 달러의 한국 정부 자금으로 돈을 벌수 있게 했다. 나쁘지 않다! 그리고 이 수익성 높은 사기 사건의 배후에 월스트리트의 손해사정인 Morgan Stanley의 딘 위터(Dean Witter)는 한국 정부와 제일은행의 새로운 미국 소유주들로부터의 막대한 수수료를 받고 있었다.

 

 

 <한국의 복지부재로 굶어 죽은 젊은 영화감독 최고은>

 


 

 

그리고 한국 정부는 이 수십억 달러의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추고, 교사 및 복지인력을

포함한 공무원의 대규모 정리해고,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대폭 삭감, 해외에서 신규로 수십억 달러의 차입금 등을 통해,,,,

 

 

 

 

한국 재무부가 자금을 조달 받은 텍사스 주 및 캘리포니아의 새로운 제일은행의 소유주들한국 내 대기업들의 채권단이 됐다. 1달러의 쓰지 않고 이제는 전자산업, 자동차 생산, 중공업, 반도체 등 한국 산업의 전반을 흔들거나 축소하거나 폐쇄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업 인수 제안 및 재벌의 분할은 서구(=미국자본)의 재정적 이익에 대한 직접적인 동의를 요구했다. 재벌 노동자들의 운명도 새로운 미국 소유주들의 손에 달려 있었다.

 

 

 

 

한국 정부는 공공기관 민영화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금융 서비스 산업 전체를 파탄시킬 수 있는 외자 개입을 허용했다. Chase Manhattan은 굿모닝증권에 대한 대량 지분을 매입했다. 골드만 삭스는 국민은행의 지분을 인수했고, 뉴욕 라이프는 국민생명을 인수했다.

 

 

 

 

한국통신과 한국가스를 포함한 주요 공익사업의 대대적인 민영화(=민영화=외자에 매각)도 요구되었다. 한국전력 공사(KEPCO)는 경매대에 오르기 위해 몇 개의 소규모 전기회사로 나뉘게(=덩치가 너무 커 분할매각 민영화) 되었으며포항 제철 (POSCO)도 완전 민영화됐다. 국영 한국중공업도 웨스팅하우스와 전략적 제휴를 맺기 위해 비슷한 운명을 기다리고 있다.(한중은 두산으로 넘어갔다)

 

 

 

 

 직접 식민지 체계 구축

 

1945, 한국이승만 대통령 밑에서 미군에 의해 최초로 설립되었던 간접 식민통치제도가 이로써 해체되었다.

한국의 지배적 기업 엘리트들은 몰락했다. 김대중 대통령 하에서 재벌의 파탄과 한국 자본주의의 해체에 적합하게 완전히

새로운 정부 체제가 수립되었다. 다시 말해, 199712IMF 구제 금융 협정에 서명한 것은 한국 국가의 구조에서 중요하고

의미 있는 변화를 뜻한다. 또한 남북 관계와 한반도 전체에 자유시장을 확대하려는 워싱턴의 계획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통일과 자유 시장

 

IMF의 협상단은 추가 임무 수행을 위해 20006월 초,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역사적인 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겨우 며칠 남겨두고 급히 서울로 들어왔다. 이것은 매우 조심성 있게 타이밍을 설정한 것이다. 당시 IMF의 서울 방문은 한국

언론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 국민들은 모두 김대중 정부의 확고한 조국 통일의 약속에 눈이 쏠려있었다. 다른 정치적

문제들은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되었다.

 

 

 

 

국민들이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무대 뒤에서는 공개토론의 열띤 논쟁을 벗어나 IMF 팀은 평양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헌재

재무장관이 서명한 새로운 IMF 협정을 조용히 마무리했다.

 

20006월의 2차 협정199712월에 체결된 첫 번째 협정보다 국민들에게 더 치명적이었다. 한국 정부는 2003년까지

어떠한 형태의 공개토론이나 반론도 없이 IMF의 한국경제에 대한 장악력을 새롭게 했다. 2000년에서 2003년까지 3년간

한국 자본주의의 해체와 분열이 나누어 일어나도록 신중하게 설계되었다.

 

 

 

 

그러나 IMF의 임무에는 다른 무엇인가가 더 있었다. IMF 사절단은 미국 대사관을 통해 평양 정상 회담에서 경제협력 의제를

담당했던 이헌재 재무장관에게 브리핑했다. 이 장관은 IMF의 충실한 신봉자였다. 재무 장관직을 맡기 전에 IMF가 강력하게

후원Watch Dog이라는 악명 높은 금융 감독 위원회(FSC)를 지휘하여 재벌 파산을 유발했다. 이 장관은 평양 출발 직전에

신중하게 브리핑을 해 남북 경제협력을 핑계로 미국의 기업이익을 확보하기로 했다. 통일 과정에서 미국의 숨겨진 의제

결국 한반도 전체의 궁극적인 재구성이다.

 

 

 

북한의 식민지화

 

평양에서 체결된 남북 경제협력 프로그램에 따라 한국 정부는 북한에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한국 최대의 재벌인 현대는 북한에 공장을 짓고 투자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현대를 비롯한 한국의 재벌들은 미국 기업들에 의해 빠르게 인수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남북 경제협력은 외국인 투자가 위장한 형태이고 월스트리트에 새로운 기회의 창출이 될 수 있다. 한국 재벌들의 새로운 미국 소유주들은 미 국무부와 협의하여 궁극적으로 북한에 대한 주요 투자를 포함한 남북 경제협력에 실마리를 찾을 것이다.

 

 

 

 

김대중의 전략은 원조와 개발로 평양을 돕고,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고, 한국의 이익을 위한 친선 및 기반 시설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북한 정권을 위협하는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허위를 유지해야 한다.

북한이 국제 통화 기금 (IMF) 및 세계은행과의 거래하는 것을 도와 주겠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리는 그들(북한)이 약화되길 바란다. 그것은 트로이 목마였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김대중 정부는 워싱턴을 대신해 배후에 무대를 마련했다. 미 군사력을 배경으로 모든 국민이 열망하는

통일의 약속은 공산주의 북한에 대한 소위 자유시장 개방을 초래할 수 있다. 이는 한국 전체의 식민지화와 빈곤을 초래할 수 있는 과정이다. 한반도는 현재 워싱턴의 지배 하에 있다.

 

원본 : https://www.globalresearch.ca/the-recolonization-of-korea/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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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셀 초서도브스키는 캐나다 온타와 대학 경제학교수이자 여러나라의 초빙교수이며 경제학자입니다. 국제경제문제에 대해

10여권의 책을 쓰고 '전쟁의 세계화'는 한국어 번역판이 출간되었습니다. 제가 작년 초에 한국경제의 종속문제에 관한 글을

쓰면서 개인적으로 97 IMF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을 한 것이 있긴 한데, 이 사건에 대해 보다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글로벌 리서치에 실린 글을 번역했습니다.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시절 우리에게 무슨 일이 왜? 일어났던 건지에 대해 간단하게 나마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당시 관료들의

이름이 실명으로 거론 된 점이 좀 유감스럽지만 외국의 저자가 관련기록들을 검토하고 서술한 거라 한국 내의 평가보다

객관적일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출처 :부동산 원문보기글쓴이 : 가을하늘

 

 

출처:: 정론직필 카페 

http://cafe.daum.net/sisa-1/dqFF/3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