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조선 역사

■ 오랑캐여진족과 연해주는 관련이 있는가? ■ 3편

自主人 2019. 3. 29. 11:47

■ 오랑캐여진족과 연해주는 관련이 있는가? 3

연해주자역 유물유적의 실체는 무엇이고 그땅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에대한 탐구를 해봅시다

▲ 토기유물

 

▲ 동양식 비석 기단

 

▲ 온돌유적

 

▲ 돌절구

눈에 낮익은 유적들이 연해주全域에서 발굴되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민족과의 연관성이 조명되고 있는것이다

그러나 이런 단편적인 나열이 연해주역사 복원에 일정부분 도움은 되지만 완전한 실체파악에는 미흡하다

발해가 아니라면 연해주유적들은 과연 뭘까?

다음 지도를 통해서 전반적인 그림을 그려 본다!!

 

 

이렇게 일률적으로 고구려(발해) 성터가 줄이어 서있다

무엇을 의미할까?

저성터들의 목적점(종착지) 는 어디인가?

 

이렇게 망루(초소)들이 해안을 보고 늘어서 있다

이들 망루성터등은 終局(종국)에는 베링쪽으로 向(향)한다고 단언한다!!

 

우리학회는 서양고지도들을 신뢰하고 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만큼 정확하고 비교적 손을 덜탔다고 본다

 

이지도를 베이스로 우리학회애서 그래픽복원한 16세기경의 땅모양이다. 연두색표시가 원래는 육지였다

연해주에서 발견되고 있는성터는 베링평원의 요지로가는 일종의 驛站역참(사라이) 으로 추정한다

 

베링평원이 우리역사에서의 쟁점인 요동요서의 본방으로 파악된다

재야나 제도권에서 헤매고있는 요동요서는 이렇게 물밑으로 가라 앉은것이다

연해주땅은 遼東(요동)으로 가는 길목땅인것이다

이런측면에서 자세히보면

 

지금의 연해주평원에서 요동으로 가는 지름길상에 발해성터라고 불리는 성채흔적이 줄이어 있는것이다!!

 

위의 지도복원도에서는 17세기에 점점 물이 차올르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동해가 형성되고 연해주북쪽으로는 거대한 호수가 있다 그호수가 지금도 흔적으로 볼수있다

 

▲ 노보찰린스크옆에 싱카이호가 그것이다.

 

고지도를 복원하면 당시의 지형과 수반된 참역사를 유추해 내는것이가 능하고 고지도의 정확성이 여기에 있는것이다!!

결론적으로 연해주땅은 大朝鮮이 세계경영을 하면서 중요한 요서지역에 거점으로 개발된 땅이었다

 

16세기 오론티우스지도에서 보면 베링평원요동으로 가는 길목에 Toloma라고 표시된 지명이 몇개보인다

Toloma의 뜻은 통로마란 말이다

 

(통하다)+ ()+ ()=Toloma =탈락

모든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이탈리아로마가 강대국이라서 로마로 길이 통한다는 말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진실은  大朝鮮通路馬인것이다!!

 

중요길목마다 성채를 짓고 아주중요한거점을 통로마란 지명을 명명한것이다

여기는 (연해주) 는 발해의 본방은 아니고 길목으로 볼수있다. 그럼발해 어디인가?

이문제는 나중에 후술한다 간단한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연해주지역의 민족들

연해주지역에는 몇몇소수민족들이 존재한다

▲ 이 깃발이 연해주 국기이다. 호랑이가 있고 빨강과 파랑은 태극을 의미한다고 볼수 있다.

 

▲ 이 종족이 나나이족이다. 완전 몽골로이드이다.

 

 

▲ 나나이족은 수렵채집민족이다. 유목족이 아니다.

 

▲ 나나이족 분포도인데 연해주 산림에 주로 거주한다.

 

▲▼ 에벤키족이다. 이들은 순록 유목민이다.

 

 

 

 

 

이들이외도 채집수렵족이 몇종족있다

연해주지역의 문화적특징은 넓은 평원이 있으나 몽골족과 같은 전형적인 기마유목민은 별로없다란점을 발견할수 있다 즉 女眞族과같은 好戰(호전)적인 집단이 거주 하지않는다는것이다

 

기존歷史에서의 여진족(오랑캐)무대가 연해주가 아니라는것을 반증한다

이들 연해주 토착민족들은 매우 양순하며 자연과 동물을 사랑하며 사는 매우 순종적인 민족들이다

 

▲ 이런 호전적인 여진족(오랭캐)의 무대가 아닌것이다.

 

한국에도 여진족이 있긴하다 샤브샤브전문점으로~~

 

러시아는 어떻게 연해주같은 광대한땅을 점유하게된것 일까?

우리는 땅한평때문에 같은민족이 무수히 죽어 갔는데 러시아는 이거대한땅을 무슨조약 한방으로 얻었다고 한다

네르친스크조약 베이징조약~ 제기랄!!

 

 

사실 베이징조약이나 지금의 러시아가 광대한땅을 취득하는과정이 석연치가 않다

 

러시아와의 조약주체가 불분하다 청나라어쩌고하는데 당시 청나라가 이거대한 땅을 할양할 이유도 없으며 나라라는것도 東洋에서는 虛構(성구)의 개념이다

이문제는 나중에 후술하겠다

 

연해주의 種主權종주권에대한 小考

 

연해주는 大朝鮮시기 遼東遼西(요동요서)베링평원의 길목으로 관리되어 왔다

여기에 많은 보급기지인 사라이(성채)세워지고 驛站(역참)역할을 해왔다 여기를

 

大朝鮮에서는 海參爲 (해삼도호부)또는 헤를란 이라 불렸다

지금도 해를란강이란 지명이 남아 있다

노래도 있지 않은가? 혜란강

 

이러던차에 海水面상승이 일어나서 이쪽의 모든 兵參병참시스템이 붕괴되고 추위가 닦쳐와 대조선입장에서는 요西지역에대한 신경을 쓰지못하였다

여기를 관리하던 조선本類人(본류인)들은 南下하여 한반도나 동북삼성 일본열도 등지로 이주하였다

 

이렇게 습지로 변하다가 물에 잠겨 버렸다 지금의 땅모양으로 지각변동이 일어난것이다

연해주는 추위에 강한 산악수렵채집민족만이 남아 있게 되었다!!

 

▲ 채집수렵민들만 남았다.

 

한반도 토착인의 재이주 연해주로~

 

1860년경부터 토착한반도인들을 중심으로 연해주로 이주를 시작한다 왜? 재이주를 감행한것인가?

이것은 대조선의 약화와 국제관계의 지형변화와 무관치 않다

 

 

어럽게 입수한 일제때당시 연해주조선인 분포도이다

두만강을 건너 이주하고 있다 당시통계로 60만명에서 90만명이란 통계도 있다 대단한 인원이다

 

이당시 한반도에는 전세계로부터 大朝鮮지배층들이 숙청당하여 끈임없이 사람들이 밀려들어 오고 있는 시기였다

 

 

원래한반도는 300백만명정도 있으며 농사채집수렵등으로 편안하게 살던 땅이다

별다른 외부침입도 없고 인구가 적으니 경쟁도 없이 지리산 淸鶴洞(청학동)처럼 옛조선의 풍습대로 나 닦으며 농사나 짓고하는 편안한 소도와도 같은 땅이었다!!

 

이런땅에 조선인 격리지역(Regervation)이 국제적으로 설정된것이다

이리되자 토착조선인들은 땅을 빼았기며 생존의 기반이 상실되자 옛날선조가 지키던 땅 연해주지역으로 逆(역)이민 하는것이다

이것이 연해주개척이란 말로 포장된것이다

 

 

연해주가 러시아로 편입된것과 관계가 없이 선조의 땅이란 막연한 믿음이 있었던것이다

처음부터도 러시아인들이 원래주인 왔다고 잘대해주었다 한다 당시

 

러시아인들도 반강제적으로 연해주땅에 이주되사람들이었다

소련시대에 시베리아강제이주하듯이 그때는 연해주지역에 러시아인들 강제이주시킨것이다

한반도조선인들과 별반다를것이 없었던 러시아인들이었다

그래서 구름같이 한반도 조선인들이 연해주로 밀려들었던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니 자경단형태로 군사조직이 생겨난다

이들이 조선독립군의 모체가 되었다

그러다가 운명의 해가 다가 왔다 1937!!!!

 

▲ 모든 고려조선인들은 강제 이주시킨것이다.!!

 

 

 

소련스탈린(유대인)의 명령이었다!!!

1937以前의 연해주역사를 집어 봤읍니다!!

 

 

지금연해주는 진짜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작은 소고

연해주의 실질역사는 제가 말씀드린 내용이 진실에 가장근사치로 부합한다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앞으로 이지역의 역사문화연구는 베링평원을 염두에 두고 전개되길 희망합니다!!

 

오랑캐문제는 지금의 짜맞추어진 가짜역사의 희생물로 두만강너머는 절대로 오랑캐지역이 아니며 현재 두만강도 지명이 이동해 온것입니다

그러니 두만강너머 오랑캐여진족의 흔적이 없고 여진말갈을 자처하는 후예민족도 없는것입니다

 

중국을 통일했다던 여진족의 후예 만주족의 나라는 무엇인가?

이들은 고려타타르인들입니다

나중에 후술하겠읍니다

 

 

출처:: 대조선삼한역사학회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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